<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를 읽고
까끌거리는 순간이 있다. 입 안에 모래가 몇 가루 들어온 느낌. 근근이 머리와 마음 사이에 모래에 낀 것 같았다. 내 욕망과 현실, 머리와 몸이 은근하게 분리된 기분이 들 때. 그럴 때 나는 흐린 눈을 하고 부유했다. 어디에 마음을 둘지 정하지 못한 채. 벨 훅스의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를 읽고 내가 두 계급 사이에서 고민할 때 까끌거림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까끌거림에 드디어 계급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래도 퇴사하지 않는 게 너에게 유리해” 일산에서 강남까지 나를 태워다 주던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안은 애매한 노동자 집안이다. 노동자치고는 엘리트이지만, 여전히 노동자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가지고 싶었던 것, 배우고 싶은 것을 다 갖고 배우며 컸다. 근데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넘어 사회로 나가니 거기엔 제한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야 제한이라는 것을 배웠다. 서서히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는 욕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예쁜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갖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사고픈 충동을 느낀다. 옷은 쉽게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돈을 다 써버리면, 나에게 계급 전복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나에게 돈을 쓰고 싶은 충동과 그래도 미래를 위해 모아야 한다는 충동 사이에서 까끌거림을 참으며 산다. 이런 건 작은 까끌거림이다.
까끌거림의 최고봉은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다. 아빠는 늘 보수적이고 현실적이다. 아빠는 톱클래스 노동자로써, 안전한 선택을 권유한다. 딸 또한 톱클래스 노동자가 되길 바라면서. 그런 아빠의 관점에서 나는 똑똑한 아이다. 일찍 취업해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죽을 것 같으면 퇴사해야지. 나도 조금만 더 버텨보고 안될 것 같으면 그냥 나오려고. 젊을 때 취업해서 해보고 싶은 것도 못 해보고 계속 살긴 싫어.” “아니 그래도 안 나가는 게 낫다니까. 젊을 때 취업한 게 얼마나 좋니. 뭐든 그 안에서 해야 해.” “죽을 것 같아도?” “… 그냥 지랄해. 그 안에서 드러누워.” 이런 대화가 계속되다, 아버지는 실패감에 젖은 얼굴로 그냥 죽을 것 같으면 그만두라고 말했다. 나는 힘들면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내뱉을 때 아빠의 얼굴에 서리는 절망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 나는 아빠의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야. 내가 죽을 것 같으면, 난 그만둘 거야. 딸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 않아?”
“네가 그만두면 아빠가 너를 책임져 줄 수가 없어. 이제는 너의 생계를 내가 책임져 줄 수가 없다. 아빠의 꿈은 너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사는 거야. 노후는 알아서 하는 거.” 강남역에 도착해서 아빠가 말했다. “딸이 유학 가고 싶은 거 안다. 네가 가고 싶은 거 맘껏 뒷바라지 못 해주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하다.” 일산에서 강남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듣기에 딱 맞는 말이었다.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당연한 말이었다. 아빠의 절망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 압도적인 계급을 가지지 못한 스스로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애매한 엘리트 노동자의 딸이다. 노동자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해외 유학, 그것도 예술을 하는 선택지를 알아볼수록 이건 내가 아는 모든 안정과는 벗어나는 일이다. 해외 영화 학교에 가고, 거기서 편집자 자리를 얻기 위해 네트워킹을 하고, 모든 것이 굉장히 도전적인 선택이다. 노동자 계급에게 예술가의 삶이란 굉장히 계급을 전복시키는 사고다. 성실하게 평생 일 했지만 내 딸이 그 계급을 유지하게 하는 데에만 성공했지,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해서는 아빠도 모른다. 모르기에 두렵고, 두렵기에 말린다. 아니, 권하지 않는다.
“출발선 위의 초조함 “이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엔 여성 서점 지기들, 여성 창작자들의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한국에서 미혼 여성으로 살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 프리랜서로 사는 것. 그들의 이야기에서 많은 용기를 얻는 한 편, 너무나도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내 계급의 사람들 이어서였나 보다. 여성이고 미혼이고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분야에서 자아를 위해 한국에서 일한다. 그 정도에는 나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에 묘하게 불안해졌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중에 결혼할 거예요?” 최근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지방에서 가족과 친구 없이 살고, 꿈을 이루면서, 역설적으로 행복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그런 것들이 행복이다. 계속 직장을 다니다가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 유학 따윈 꿈꾼 적 없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그럼에도 까끌거림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만나 싫었던 사람들은 나보다 계급이 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주로 남성이거나 자본가였다. 나는 직업적인 특성상 나보다 계급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다. 나는 종종 이 직업이 기만적이라고 느낀다. 아래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걸 알리는 창작자의 일을 하지만, 현실은 화이트칼라인 노동자다. 노동자의 계급 위로 예술가의 길을 택한다면 돈은 없지만 까끌거림은 줄어들까. 까끌거림을 삼키며 살게 될까.
유학을 간다는 것은 벨 훅스의 유학생활처럼, 몇 년은 더 까끌거림을 느끼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운이 좋게 계급을 전복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유학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사는 선택을 한다고 해도 매일 나는 크고 작은 선택에서 까끌거림을 느끼며, 계급을 느끼며 살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내 까끌거림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