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 - 아몬드를 읽고(스포 있음)

데미안이 떠오르는 소설

by 최광래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데미안이 남긴 편지처럼(헤르만 헤세 著). 성장을 위한 투쟁은 주체성을 전제로 한다. 스스로 움직이는 힘,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다. 진통이라는 어머니의 인고 끝에 태어난 사람을 '태어나짐'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작이 수동적이었으니 성장이라도 능동적이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저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성장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보장 체계 속에서는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이뤄지는 것. 어머니로부터,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키워짐을 당하는 인간에게 투쟁이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 잔인한 드라마의 주인공 윤재는 선천적으로 자라지 못한 아몬드(편도체)를 지니고 태어났다. 나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재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갑각류의 성장이 탈피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탈피는 죽음을 전제로 하는 투쟁의 싸움인데, 새는 태어나는 순간에 한 번, 갑각류는 성장이 필요한 순간마다 한 번씩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무한히도 살 수 있는 갑각류의 죽음은 대부분, 탈피를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껍질을 깨지 못한 새, 주체성을 찾지 못한 인간, 탈피에 실패한 가재. 다르지만 같은 세 존재의 결과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이야기는 무언가 결핍된 채로 자란 윤재, 이수, 도라의 이야기로 서술된다. 윤재는 이수를 통해 감정을 배우고, 도라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편도체가 반응하지 않아서 감정을 지니지 못한 채로 자라는 윤재는, 누구보다 감정적이지만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이수(이수는 자신의 이런 성향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름조차 곤이로 바꾼다. 어쩌면 곤이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지음으로써, 껍질을 깼는지도 모른다.)를 통해서 감정의 존재를 느끼고 의문을 가진다. 다르다고 느끼면서도 어디선가 진한 공감을 느끼는 둘은 인간성의 두 항목, 이성과 감성을 대변하며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성장한다.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새 성장해버린 그들의 결과는 이야기의 끝에서 '철사 형'이라는 탈피를 마주한다. 탈피의 결과는 성장일까 죽음일까.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나타나는 감정적 동요와 이성적 오류는 인간이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껍질을 깨기 위한 '공진'임을 증명하듯 잔혹할 정도로 철저하고 세밀하게 묘사된다.


한편 도라는 무엇인가. 자꾸만 떠오르는 갑갑함으로 숨을 멎게 하기도 하며, 첫 입맞춤의 순간을 선사해서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하는 존재. 이성도 감성도 알아챌 수 있는 공통의 무언가, 바로 사랑이다. 이성적이어도, 감성적이어도 느낄 수 있고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랑'이 도라를 통해 투영된다. 하지만, 그런 사랑도 어딘가 결핍을 지니고 있는 모습은 우리가 지닌 결핍이 어쩌면 당연한 것, 그 결핍을 늘려가며 껍질을 바꾸는 일이 성장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야기의 끝에서 윤재가 마주한 세상은 무엇인가. 그의 볼을 타고 내려 온 뜨거운 액체, 눈물은 예전부터 중의적으로 사용되곤 했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반대의 개념을 동시에 서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질, 앞으로의 윤재는 아마도 더 많이 아플 것이고 더 많이 기쁠 것이다. 눈물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삶에는 틈이 필요하다. 껍질을 깨기 위해 움직일 틈, 무언가 완전히 채워진 공간에서 우리는 움직일 수 없다. 약간의 밀도를 확보하는 과정, 결핍으로 느끼는 무언가가 사실은 투쟁의 기회인 것이다. 모자람이 많은 사람은 더 크게 휘둘러서 껍질을 깰 수 있다. 허리부터 써서 크게 휘두르는 것이다. 우리는 결핍으로 확보한 공간에서, 더 크고 강한 스윙을 쳐내야 할 것이다. 결핍의 순간에 환호하라, 껍질을 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 아름다운 밤입니다!"
가요 프로를 즐겨 보던 엄마 덕에 수없이 봐 온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흔하게 쓰여도 되는 걸까.

"난 사랑이 실없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도 무슨 대단하고 영원한 것처럼 말하는 게 꼴같잖아. 난 그런 물렁한 거 말고 강한 게 좋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코 앞에 있었다. 그 애의 머리칼이 내 얼굴을 때렸다. 아. 내가 짧게 신음했다. 따가웠다. 갑자기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내려앉았다. 무겁고 기분 나쁜 돌덩이가.

진심. 이라는 단어 뒤에 찍힌 마침표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 마침표가 곤이의 삶을 바꾸기를 바랐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랐다. 진심.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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