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건 많고도 없다
연 소득의 앞자리가 많이 바뀌었다. 아직도 부족한 것 같지만 높다면 높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벌게 되었다. 원한다면 고마운 사람들에게 밥을 사고서도 내 나름의 소비와 재테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훨씬 나아졌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난함과 부유함 중에서 저울질을 하자면 부유한 쪽이 좋았다. 노래 가사처럼 어려서부터 가난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짜장면은 생일날에만 먹을 수 있었고, 좁은 전세방에서 가족 네 명이 도란도란 누워 자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나는 아직도 침대보다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일이 익숙하고, 좁은 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다.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부의 정규분포를 쌓아봤을 때 하위 측에 있던 게 우리 집이었다고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부에 대한 집착은 있으면서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부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만, 그것이 좋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속마음에서는 누구보다 돈을 좋아하고 부와 사치에 대해서 갈망하고 있지만, 교육을 비롯한 성장 환경에서 그런 태도가 좋지 못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했다. '이건 잠깐의 욕망일 뿐이야. 비교되는 자본주의적 사고는 결국 행복할 수 없어.'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던 게 사실이다.
요즘은 부에 대해서 모두가 이야기한다. 잘 나가는 유튜버들도 재테크와 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소비와 절약, 크게 따지면 두 가지 계파로 나뉘는 듯 하지만, 나는 어쨌든 이제 돈에 대해서 모두가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방법으로 부를 쌓거나, 부를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니 그토록 터부시 했던 돈과 부에 대한 이야기들. 굳이 그랬어야 했냐 싶긴 하다.
몇 번의 사회생활을 통해 돈벌이를 시작했다. 20대의 나는 일의 가치는 돈보다 경험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정확히 따져보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터부시 되는 돈에 대한 욕심과 사회적으로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의 자세를 막무가내로 따라한 것이다. 내가 어떤 지도 모르면서.
연봉이 올랐지만, 내가 더 여유로워졌냐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카드값에 쫓기고 써야 할 돈들은 버는 돈보다 많은 것 같다. 정신 차려보면 통장엔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덜 버는데도 불구하고 넉넉하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유에 있어 돈은 꽤나 중요하지만, 돈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며 사는 자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과, 주체적으로 즐겁게 살고 싶다는 욕심을 적당희 희석해서 살고 있다. 술도 소맥이 더 좋고, 칵테일이 더 맛있지 않은가. 후유증은 올라올지 몰라도 섞는 게 맛은 좋다. 인생도 그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