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변신 끝에 얻는 사랑

출산의 고통을 겪었거나 지켜본 사람은 변신의 고통을 알 것이다.

by 코코넛


매미 울음의 절정기인가?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매미의 울음은 점점 소란스럽다.

어쩌면 몇 날 며칠 소란스럽기는 같았을 텐데,

오늘만 유독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인식에는 스위치가 있어서 필요에 따라 껐다가 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렸을 때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강가로 달려갔었다.

집이 강변이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한강이 흘렀으니,

강가의 모든 풍경은 습관처럼 관찰이 거듭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감히 나의 서정의 바탕은 한강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중 특히 관심의 대상은

한강 변에 있던 오래된 수양버들과

그 나무에 세 들어 살던 다양한 곤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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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나의 양육 방식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누구한테 양육을 받든 지 간에 아이들이 존재하는 조그만 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만큼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인식되고,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사가 그저 조그마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존재이고 아이의 세계도 작다.

그리고 그런 작은 세계에서 아이의 흔들 목마는 비율로 칠 때,

우락부락한 아일랜드 사냥개만큼이나 커다랗고 높이 솟은 존재로 보이는 법이다. “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발췌


소인국과 대인국으로 굳이 나누지 않아도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된 후의 감각으로

지각하는 거리의 길이나 사물의 크기가 엄청나게 다른 걸

느끼고 놀란 경험들을 모두 했을 것이다.


< 아니, 이곳이 이렇게 가까웠다고? >


< 어머, 집이 왜 그렇게 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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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보다 더 재밌는

매미, 더듬이가 기다란 하늘소, 수컷 사슴의 뿔을 닮은 넓적사슴벌레,

멋진 뿔을 가진 사슴풍뎅이, 덩치가 큰 장수풍뎅이, 코끼리처럼 주둥이가 나온 왕바구미,

땅바닥과 나무를 매일 분주하게 떼를 지어 왕복하는 개미 등이

강둑에 홀로 긴 세월을 버틴 미루나무의 가족이었다.

나무의 뿌리 중 땅 위로 불거져서 올라온 지류에 앉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한강의 아침 풍경을 보면 기분이 좋았었다.

오래 앉아있지는 못했지만,

미루나무와 곤충과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로 감성 충만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현재는 곤충을 자주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정겨운 매미의 울음에도 오늘처럼 반응하는 날이 드문?

어른이 된 후부터 해야 할 일이 산재해서 잊은 일상의 루틴일 수 있다.

매미의 울음을 인지한 후 든 첫 생각 역시,

매미의 삶을 시와 노랫말로 자주 소환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이다.

정말 사회화가 잘 된 도시인이다.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을 가는 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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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매미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이 다른 곤충과 차별화하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나비는 애벌레에서 바로 나비로 태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3번의 변신으로 제 모습을 갖는 것은 고통으로 얼룩진 삶과 닮지 않았을까?

그래서 매미의 울음이 시끄러운 와중에 구슬프게 들린다.


매미는 수컷만 울 수 있다고 한다.

매미의 울음은 구애를 위한 울음이니 황홀한 울음인가?

수컷의 울음을 듣고 암컷 매미가 호응하면 둘이 짝짓기에 돌입하므로 매미의 번식이 이어진다.

긴 기다림의 끝에 맺어진 짧은 만남.

생의 기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바라보면 낭만적이 이야기다.

그런 측면이 노랫말이나 시의 소재로 활용되는 두 번째 이유는 아닐까?

수태한 암컷이 나무에 알을 낳으면, 매미의 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알을 찢고 나오면 굼벵이가 되어서 땅속에서 5년에서 17년?이라는 긴 시간 살다가

지상 위로 올라온 후에야 비로소 날개를 달고,

짧은 기간 나무 그늘에서 짝 찾기에 온 힘을 기울이는, 매미의 삶.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의 가장 나쁜 단점과 비열한 면모를

대개 우리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 때문에 드러내곤 하는 법이다. “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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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을 잡아 손에서 손으로 옮겨주던

방과 후의 관찰 시간도 오롯이 동네 아이들의 놀이였다.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이렇게 오래도록 잊지 않는 경험의 일부,

오감을 활용한 놀이가 그 수양버들 한 그루의 힘이었을 수도 있다.

나무들도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어서 요즘은 수양버들을 만나기 참 어렵다.

그러나, 양재천변에 수양버들 몇 그루가 아주 우아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걸 가끔 본다.


서서히 움직이고, 변하는 풍경으로 다져진 감성,

그런 종류의 서정이 어쩌면 삭막한 현실과 마주할 때면

감정적으로 좌충우돌하느라 행동이 느려진 것은 혹시 아닌지

기회가 생기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듯하다.

서울 태생인데 항상 충청도가 고향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충청도에서는 살아본 적도 없는데, 우습다.


이런 현상이 모두 느린 내 행동이 자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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