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만났던 시절인연을 다시 만났을 때의 느낌
만남에 대한 기분 좋은 고찰을 해 봤다.
생각의 출발은 아주 오래된 인연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면서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통화 중, 그를 <오빠>라고 불렀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너무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고
호칭 역시 매일 만나던 사람처럼 친숙했다.
생각해 보니, 선배 언니에게도 그랬던 기억이 있었고,
동창 친구에게도 오늘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성당에서 활동했던 친구나 언니 오빠들은 기억에서 계속 나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일까?
아주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만나게 되었는데,
공백을 한걸음에 뛰어넘어서
말이 어렸을 때의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친숙해지는 점을 설명하려면,
그 이유 이외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던 인연들.
굳이 기억하면서 살았던 적이 없는 인연들.
그래서 반가운 것일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이 바뀐 모습들이고 그 시절의 사람이 아닌데도
시절 인연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의 인연은 한두 살 서로 차이가 나는 사람에게
언니, 오빠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이는데,
어렸을 때의 인연들에게는 깍듯하게 언니, 오빠라고 자동으로 부르게 된다.
<만나고 살지 않은 기간이 길어도>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다.
못 본 시간 속에서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았는지가
전혀 문제가 아닌 그런 종류의 만남?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서 편안한 만남?
외면하기 어려운 만남?
헤어질 일이 없는 만남?
이름 붙여 설명하기 어려운 만남이 바로 이런 종류의 만남이다.
”목적이야 여러 가지 있지. 편안한 가운데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하는 게 목적일 수 있고,
권력을 거머쥐고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게 목적일 수 있고,
돈을 손에 넣는 것도, 목적일 수 있고 말이야.
어쩌면 이 모든 걸 이루는 게 목적일지도 몰라.
간혹 선동자가 병동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환자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어.
사회에는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는 법이야. “
- 캔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발췌
어렸을 때의 인상보다 더 좋은 사람과 더 날카롭게 변한 사람,
성격 좋고 호탕하다고 기억했던 사람이
지금 보니, 편파적으로 바뀐 사람,
그랬다. 긴 시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얼굴과 태도와 몸짓이 공백의 시간을 표현했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낸 시간이 짧은 시간 동안 암암리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40대 이후의 얼굴에는 행적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오롯이 드러나는 걸 확인했다.
이전을 몰랐다면 모를 그런 숨은 변천사?
”인간은 타인이 보통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면
그 사람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는 것을 수간호사는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산타클로스나 전도사,
그리고 고귀한 목적으로 거금을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그런 일을 할까?
의심하게 된다.
또 젊은 변호사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 아이들에게 과자를 돌리기라도 하면,
특히 주 의회 선거 직전에 그렇게 할 경우,
사람들은 – 이 능구렁이야, 누가 바보인 줄 알아 – 하며 비웃기 마련이다. “
-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발췌
어느 사이, 나는 타인의 말과 태도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읽어낸다.
몇 초, 몇 분 사이에 상대방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노력해서 될 관계와 노력해도 소용없는 관계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의 만남은 까다로운데,
어렸을 적 맺었던 인연들은 갑자기 훅
마음의 빗장을 열고 들어온다.
관계의 편안함은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있지 않을 때만 가능한 것일까?
하는 물음표가 따라왔다.
우린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물들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석처럼 서로를 한 덩어리,
가족?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만남은 혹시,
불꽃놀이와 같은 만남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