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먹거리는 넘치는데 먹거리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인에게 먹거리는 중요한 이슈다.
의사들마다 권장하는 식사량과 음식의 종류와
식사와 식사 사이의 시간을 비롯해서 이제는 먹는 순서까지 이야기한다.
팔랑귀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고달플까?
삶은 달걀 2개와 제철 과일 약간, 견과류를 먹은 후
다크 초콜릿 두 조각과 커피 한 잔이 나의 아침 메뉴다.
벌써 삼 년이 조금 넘은 듯하다. 지인 중에 미식가가 많은데
이구동성으로 지루하게 어떻게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느냐고 반문한다.
글쎄, 하루 한 끼니는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그 이후는 그날그날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먹는 생활에 나는 만족한다.
한 끼니가 소금이나 다른 첨가물이 없는 자연식이므로
저녁에 섭취하는 음식은 짜다 달다 혹은 열량이 높다 등등 따지지 않고
분위기에 따라먹는다는 점이 장점 아닐까?
작년까지는 계란을 삶아 먹지 않고 프라이로 해서 먹었었다.
프라이에서 삶은 계란으로 바꾼 이유는
열량계산을 한 것보다는 조리 과정이 간편해서다.
전기만 꽂아놓으면 되는 기특한 녀석을 장만한 효과?
그러나 여전히 프라이를 사랑한다.
아침 식단을 무염으로 섭취한 결과로 나타난 효과이어서인지, 나의 미각은 섬세하다.
재료 자체가 가진 맛을 음미할 수 있어서 모든 음식이 맛있다?
사실 나는 눈으로 먼저 먹고, 코로 먹고 나서야 입으로 먹는 타입이라 먹지 못하는 음식도 많다.
그렇지만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장식해 놓은 꽃들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연애를 이야기하는 가사 때문에 음악을 사랑하고,
정념을 자극하는 맛 때문에 문학을 사랑했지만,
열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실제적인 그녀의 정신은 자신의 기질과 상반되는
그 무엇이었기에 더더욱 계율을 짜증스럽게 여겼듯이
신앙의 의의에 대하여 반감을 느꼈다. “
- 귀스타브 폴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서 발췌
<맛>도 다양한 이유로 호불호가 생기지 않을까? 예를 들면,
그 음식이 탄생하기까지의 기원을 알고 있어서 친숙한 기분 때문에,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친숙함으로,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해서와 같은 이유 많이다.
제각각 입맛이 다른 이유는 선천적이기보다 후천적이지 않을까?
맛집 리스트에 올라온 집들을 방문했어도 내 입맛엔 심드렁했었던 적이 많았다.
자극이 너무 강한 맛을 선호하지 않는 나의 기호 때문이었다.
그래서 <맛>의 기호도는 언제부터 나타나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빵 와인 초콜릿>이라는 책에서 <미각>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다.
”맛의 선호는 자궁 안에서 정해진다.
우리의 첫 맛봉오리
(척추동물에서 미각을 맡은 꽃봉오리 모양의 기관으로, 주로 혀의 윗면에 분포한다 )는
수정되고 8주 후에 생긴다.
12주에 태아가 삼키기 시작하면 양수가 미각 수용체를 자극한다.
태어나면 미각이 우리의 가장 발달된 주요 감각이다.
우리가 독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돕는 진화적 반응이다.
단맛 (엄마의 젖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 )은 안전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존재한다는 신호다.
쓴맛은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이며,
아기들은 독을 피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그랬다. “
- 심란 세티의 빵 와인 초콜릿에서 발췌
태어나면서부터 발달했던 감각인 <미각>도 노화할까?
노년으로 갈수록 음식을 짜게 만든다는 말을 들었었다.
미각이 둔해져서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나이 탓이라기보다는 생활 습관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다 보면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먹어야 맛있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저염식이 맛이 없다고 느낀다면 이미 미각이 둔해진 탓은 아닐까?
자세하게 알지 못하므로
나는 그렇게 믿고 하루 한 끼를 무염으로 먹는 생활을 즐기는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맛을 모두 감별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으로.
”인생의 온갖 환멸 속에서 관념으로라도 고귀한 성격,
순수한 애정, 행복의 정경 (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와 경치 )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위안입니다.
저처럼 세상 멀찍이 이런 곳에 파묻혀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낙입니다. “
- 귀스타브 폴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서 발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적극적인 삶을 산다고 믿지만,
주변인들이 자주 나를 두고 하는 평가는
<자신감이 결여되었다>라는 말, 혹은 <당돌하다>라는 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지 평가가 제일 많았다.
그 이유를 찾아 았더니, 소통하는 방법이 서툴지 않았을까? 아니면,
윗 문장에서처럼,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력이 빚은 어떤 두려움으로
<외지에 살던 사람이 돌아오면 텃세가 심해서, 눈치를 많이 보게 되지 않나?>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서였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 것인지,
어떤 즐거움을 취할 것인지,
선택의 순간이 이어져서 첫발을 뗀 곳에서부터 아주 멀리까지 걸어왔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다른 감각이나 사고는 열심히 공진화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변하지 않은, 진화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미각>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추측하자면 눈과 코로 먹는 습관이
미각의 진화를 방해했다고 볼 뿐이다.
소믈리에라는 직업도 있는 요즘이니
미각이 잘 발달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자 재능이다.
물맛, 와인맛 감별사 중 하나를 고르라고 누군가가 기회를 준다면
나는 와인맛 감별을 선호한다.
<음식의 색에 따라서 그릇의 색을 선택하면 눈으로 먼저 먹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자극이 된다. 취향이 다르므로 어떤 색을 보면 입막이 더 살아나는지
스스로 체크한 후 결정하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