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녀는 아름다웠다

평판이라는 게 제각각이고 또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by 코코넛


건물과 건물 사이,

한글 간판이 드문드문 보이는 NewMalden의 중앙통,

<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지역이다 >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3층짜리 단아한 건물의 주인은 한국인이었다.

건물의 1층에서 명품 그릇의 비중이 높은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중 가장 부자라고 정평이 났었다.

<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

그녀가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을 접한 지 벌써 몇 년이나 흘렀는데,

<누가 어떻다더라>와 같은 소문을 접할 때마다

나는 그분을 떠올린다.


그분과의 인연의 시작은 그분의 딸이 학교 후배이고,

종교가 같아서였는데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그녀가 먼저 내게 다가섰고 부부가 모두 나를 아끼셨다.


내 눈에 그녀는 연세에 비해 소녀 같았다.

언제나 투피스를 입으셨는데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엘레강스한 차림으로 허리를 강조하셨다.

한마디로 그녀는

단아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연출할 줄 아는 분이었고,

자기 관리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분이셨다.


처음에는 그분의 평판에 대해 아는 게 없었는데

내가 그분과 가까이 지내자

< 어떻게 그런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와 같은 말로 시작해서

그분을 비하하는 이야기들이 내 귀에도 속속 들어왔다.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상반된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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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대할 때 차근차근 신중을, 기해야 하고

나중에 가서 바로잡고 씻어내기가 극히 힘든 과오를 범하거나

편견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발췌


그 시절,

나는 사람에 대한 평판은 어떤 경로로 탄생해서

어떻게 와전되는지 잘 알게 되었다.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다른 입으로 옮겨질 때마다

내용은 왜곡을 거듭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곤 했다.

< 그런 걸 빗대어 게임도 만들어졌고,

게임을 하거나 관람할 땐 우스운 해프닝으로 바라보며 웃을 수 있지만 >

현실에서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이 되었을 땐

심각하게 다르다.


물론 현재의 문화에서는

악플도 관심이라면서 무플보다 악플이 더 낮다고 말하는

관종, 즉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직종에 종사자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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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그분은 경제관념이 뚜렷하고,

성실하면서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도 열심히 하시는 분이셨다.

가게의 매장을 지키는 시간에 손님 응대가 필요할 때가 아니면,

틈틈이 불어를 공부하셨고, 이면지를 활용해서 글을 쓰셨다.

작은 것에 감동하셨고, 남의 돈을 공짜로 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왜 소문은 그녀를 악독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어쩌면 그녀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클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철학이 완고했으므로 공짜로 남의 것을 탐하는 사람을

대놓고 싫어했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냉정했다.


예를 들자면, 기부금을 모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슈를 가지고 와서

<당신은 부자이니 기부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녀는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참 많은 곳에 기부하면서 살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호응할 수 없는 종류의 기부,

떠밀리듯이 하는 기부는 거부했다.


”노력도 하지 않고 공짜로 어서 빨리라는 것이었죠!

다 갖춰진 상태에서 살고 남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남이 씹어준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한 겁니다. “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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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당한 사람들이 말의 출발지일 때가 많은 것을 알았다.

집세는 몇 개월이나 밀려 있는 사람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면

그녀는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 사람에게 삿대질하고 욕을 했다.

그런 장면을 본 사람들은 문제의 발단을 떠나

화내고 욕하는 사람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의 흉을 보는 듯했다.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성경 구절처럼

그분이 기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문나지 않는다.

선행은 들추어지지 않고 그분의 과격한 성격, 단호함, 냉정함을 비판했다.


그런 사실이 안타까워서 나는

그분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 그럴 때는 이렇게 하시면 안 되나요? >,

< 그 사람도 억울할 수 있지 않나요? >하고

연배가 한참 위인 분을 가르치려 들었다.

< 엉터리 같은 말, 도덕책에서나 나올법한 말,

누구나 아는 말을 해도 그녀는 중간에 절대 말을 끊지 않으셨다 >


그분은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으신 후

내 이름 앞에다 세인트를 붙여,

< 지금까지 세인트 누구의 말씀입니다 >라고 말씀하신 후

혀를 차시면서 내가 철이 없다는 평가를 하셨다.

그러시고는 철없음이 나의 매력이라면서

죽는 날까지 철들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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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가 아니라는데, 이건 진리입니다.

술타령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도 내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더할 나위도 없는 진리이지요.

하지만 극빈이라면, 형씨, 극빈은 죄랍니다.

그냥 가난한 정도라면 아직은 타고난 감정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한 상태라면 아무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극빈하면 지팡이로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숫제 사람들 무리에서 빗자루로 싹 쓸어내지요.

괜히 더 모욕을 주려고요. 이것도 옳은 일이지요.

극빈한 상태에서는 그 스스로 자신을 모욕할 태세를 갖추니까요. “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발췌


그분과는 거의 반대 성격인 내가 그분을 이해하고,

그분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너그러운 분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나보다 연배가 어린 친구가 나를 가르치려는 듯한 말을 하면

기분이 상하는 경험을 할 때마다

내가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이 잘못했었는지 깨닫곤 한다.


그녀는 내 기억에서 아름다웠다.


<야크나 코끼리 모두 덩치가 큰 포유류이면서

초식동물이라 소문이나 풍문처럼,

처음의 시작은 악의가 없는 누군가의 하소연이었을지도 모르는 게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뒤틀리고 부풀려져서 코끼리의 덩치처럼 무거움을 양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런 이미지를 만든 배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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