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처럼, 최선을 다하자

아주 작은 반딧불이의 동선을 따라 나무와 풀들은 어둠을 찢고 일어선다.

by 코코넛


지인과의 통화 중

어렸을 때의 이야기가 화재로 잠시 등장한 일 때문일까?

갑자기,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온종일,

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오늘로 달려와 내 일상에 숟가락을 얹듯 끼어들었다.

어리숙한 성격이 부른 좌충우돌?

내 삶을 뒤돌아보니 사회와 공진화하는 과정에서

신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절대 벗어나지 못했을 함정들이 많았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습관이 깃들었을 듯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고통이나 슬픔도 지금은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

마치 소설에서 읽은 텍스트의 기억처럼

감정이 증발한 이야기로 남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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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에 대해서조차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두렵고 거북해서

그 어색함을 못 이긴 나머지 일찍부터 숙달된 익살꾼이 되었습니다.

즉 어느 틈에 진실을 단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발췌


타고난 성격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성장과정의 환경에 의해 타고난 성격 중

어떤 것은 은폐되고, 또 어떤 것은 자라고, 또 어떤 것은,

성장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맴돌기도 하는 듯하다.

(이 말은 일반화가 아니라 내 삶에서 드러난 일만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사교적인 면이 전혀 없던 아이가 아니었으니 친한 친구들이 늘 주변에 있었다.

수줍어하는 면과 당돌함이 공존했었고,

보수적인 면과 혁신적인 면이 들쑥날쑥해서

한 마디로 단정 짓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그러므로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엔 어려운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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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는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어떤 순간에, 예컨대 소가 풀밭에서 느긋하게 자고 있다가

갑자기 꼬리로 배에 앉은 쇠등에를 탁! 쳐서 죽이듯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정체를

노여움이라는 형태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언제나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본성이 또한 인간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자격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저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발췌


모두가 공감하는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동정심이라는 카테고리에

도전장을 들이미는 색다른 감정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독특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타인과 조금의 차이라도 지녔다면, 그것은

서로 세세히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지 못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협화음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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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은 억울했고,

또 가끔은 화났고,

슬펐고, 고마웠고, 기뻤고,

사는 일은 어쩌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들을 분출하거나 제어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이런 감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혹시 존재할까?

같은 상황에서도 개개인의 자이가 존재하는 것은

초보자와 숙련공의 차이처럼, 혹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좋다, 나쁘다로 나뉠 뿐이다. 아닌가?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성격에 모가 났다거나 진상이란 말을 듣는 것 아닐까?




존 버거의 <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문구가 생각나는 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는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곳저곳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개개인의 능력 차이와 경험 차이,

문화차이로 비롯되는

이해의 차이를 포괄할 수 있는 문장이어서가 아닐까?


서로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니,

다름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다.

상처받지 않고 상황을 이해하는 게 현명한 일이고,

다르므로 발생하는 일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애써 설득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니, 가끔은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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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는 어두울수록 오롯이 드러난다.

작아도 충분히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처럼,

어떤 극한 상황 (분노, 절망, 좌절, 배신)에서든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이 나를 알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나는 한 여름의 밤을 빛으로 밝히는 반딧불이가 좋다.

크고 강한 게 항상 우세하다는 관점을 뒤집듯

그 작은 몸으로 어둠을 밝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반딧불이처럼.

나도 내가 지나간 자리에

빛과 닮은 지분을 남길 수 있기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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