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
긴 하루,
하루에 섭취할 것 전부를 밖에서 해결한 날은 같은 양의 일,
혹은 같은 무게의 일을 하더라도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외부에서 하는 일은 모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일이라
현실적으로는 훨씬 가치가 있는데,
심적인 보람? 아니 성취도 면에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낮은 결과치를 얻는다는 생각은 자폐 기질이 드러나는 발상이겠지?
오늘, 지인과의 대화에서 자폐 성향을 지닌 사람의 행동을 주고받아서였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내 안에 어느 정도의 자폐 성향이 있는 것일까?>에 관한
뒤적임이 시작되었다.
지하철이 정차했다 다시 달리는 횟수만큼
기억의 폴더들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했으나
어느 한쪽으로 나를 밀어 넣기엔 너무 애매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좋게 표현하면 내성적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자폐 기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자폐 기질이 아주 강하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하는 모든 놀이문화도 즐기고,
함께하는 시간에 몰입도가 높다.
그렇다면 나는 이중의 성격 체계를 가진 것일까?
“세상만사를 궁리한 끝에 취할 길이란 두 가지밖에 없네.
어리석게 복종하던지, 아니면 반항할 뿐이지.
이 사실을 알게 된 인간의 초연한 입장에서 자네에게 설명하겠네,
나는 아무것에도 복종하지 않네. 알겠는가?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서 발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복종을 싫어했다.
어렸을 때부터 뚜렷하게 두드러진 성향이 바로 자유의지로 하려고 했었다는 점이다.
평소에 내 방 청소를 어머니가 하셨는데,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터 어머니는 가끔 지나가는 말씀처럼
< 이제 다 자랐으니 자기 방 청소는 스스로 할 수 있어야지 >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 날,
방 청소하려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긴 후 막 청소하려고 하는 찰나에
< 오늘은 방 청소를 꼭 스스로 해! >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곧장 집 밖으로 나갔다.
자발적으로 하려던 일이 망쳐지는 순간
청소하기가 싫어진 것이다.
집에서 물이 쇠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고,
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도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면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성격이었던 듯하다.
자발적으로 선생님을 도와드린 적도 많지만 시킨 일은 피했던 일화도 많다.
담임선생님이 붙여 준 별명 중 <돌깍쟁이>가 있는데,
바로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에서는 열성을 보이지만
시킨 일은 하지 않으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면을 아셔서 붙여준 별명이다.
”출세하기 위해서 자네가 해야 할 노력과 필사적 싸움이 어떤가를 판단해 보게.
항아리 속에 들어 있는 거미들처럼 자네들은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네.
왜냐하면 좋은 자리는 5만 개나 되지 않으니까.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펼치든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집단 속으로 대포알처럼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없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에 굴복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비방하려 들지,
왜냐하면 천재는 분배하지 않고 독점하니까 말일세.
천재가 버티기만 하면 사람들은 굴복하기 마련이네.
한마디로, 사람들은 무릎 꿇고 존경하는 법일세.
왜냐하면 사람들은 천재를 진흙 속에 묻어버릴 수 없으니까.
타락은 힘을 얻고 재능은 희귀한 것일세.
그래서 타락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함의 무기고
자네는 이 타락의 극치를 여러 곳에서 느낄 걸세.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서 발췌
눈을 돌리는 곳마다 모두 출세하는 방법, 성공의 지름길,
노하우 대방출과 같은 이야기로 넘쳐나는 세상이라
마치 성공하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듯 여겨지는 자괴감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이왕 태어났으니 성공하고 싶은 것일까?
이런 종류의 자문을 했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성공이란 무엇일까?라는 자문과 마주친 이후로
내 삶은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나 출세와 한발 물러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찾았던 답은,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고,
타인을 다스리려 하는 성공이 아닌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성공은
바로 자존감이 높아서 비굴해지지 않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어머! 이런 답을 찾은 것, 역시 자폐 성향?
어둠이 건물을 완전하게 감싼 시간이다.
어둠이 포근함이라고 느껴지는 것으로 미루어
내가 자폐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다고 가정해도
자존감이 하락할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