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꿈, 사이의 공간

체험한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

by 코코넛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였다.

낮잠을 잔 적도 없고 쉽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편에 속하지도 않는데

지하철에서 깜박 잠이 들었나? 들었다? 아니다 그 사이에 있었다?


졸음이 몰려오는 느낌이 살짝 있었지만,

공공장소에서 자본 경험이 전무했었던 터라

내가 잠에 빠져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세 정거장을 지나간 이후의 의식이 혼미하다.


이상한 이미지와 함께 전개된 현상이 사실인 듯 아닌 듯

앞뒤가 맞지 않는 듯 맞는 터라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을 보았다.

양쪽 문 근처에 서서 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빈자리가 없이 빽빽하게 앉은 승객들이 보였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지하철이 그나마 쾌적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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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톡으로 메시지가 온 소리와 진동으로 핸드폰을 켰다.

메시지에 응답한 후 주변을 휙 돌아보니 조금 전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빈자리도 드문드문 보였고, 양쪽 여닫이문 주위에도 서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이게 뭐지? 조금 전과 왜 다르지? 난 무엇을 본 것이지?

그제야 내가 잠시 졸았다는 걸 온전하게 인지했다.

꿈이 아닌 꿈? 꿈속에서 또 꿈을 꾸었던 것인가?

그것도 조는 꿈을? 환상 같은 게 잠시 나타났었던 듯하다.


"인간에게는 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가 있다.

이때 우리는 눈을 절반쯤 뜬 상태에서 한편으로는 꿈을 꾸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절반쯤 의식하는데,

이런 상태로 오 분 동안에 꾸는 꿈에

눈을 꼭 감고 완전한 무의식 상태에 빠지면

다섯 밤 동안 자면서 꾸는 꿈보다 더 많은 꿈을 꾼다.

이런 때에 우리 인간은 자기 정신의 작용 능력을 얼마간 깨닫게 되는바,

육체의 결박과 제약에서 벗어난 정신이

시공을 박차고 지상에서 솟아오르며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을 어렴풋이 인식하는 것이다."


-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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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꽃향기를 맡았던 게

어쩌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들고 탄 커피의 향일 수도 있다.

분명히 이 향의 주인이 무슨 꽃이지? 하면서 꽃 이름을 알아맞히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방을 뒤져 콤팩트를 꺼내서 거울을 봤다.

혹시 졸다가 침을 흘렸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


다행스럽게 얼굴 상태는 양호했다.


정신이 맑아진 상태에서 꽃향기를 맡은 이유를 생각하다

몇 년 전에 어머니를 모신 공원묘지에서도 쌍화차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공원묘지는 한산했었고,

주변에는 찻집이 있을 만한 장소도 아닌데 쌍화차 냄새를 맡은 게 신기했었다.

심지어 그때는 졸던 상태가 아니라 걷고 있었다.


< 내가 감기 기운이 있는 걸 알아채신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쌍화차를 준비하셨나? >


그렇게 생각했었고,

신비로움을 체험했다고 여겼는데,

그렇다면 오늘의 꽃향기는 어떤 의미이고 누가 준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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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갑갑한 거리에서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며

변화 같은 것을 결코 바란 적이 없는 사람들,

습관이 정말로 제2의 천성이 되어버려 자신의 좁은 일상 활동 영역을 형성하는

건물과 거리와 돌과 벽을 하나하나까지 거의 사랑하다시피 하게 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조차도 결국에 가서 죽음의 손길을 느낄 때

자연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바라보기를 갈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오랫동안 고통과 즐거움을 겪으며 보낸 장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오게 되면 이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


-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발췌


집에 도착한 후에도 내가 맡은 향기에 대한 의문이 지속되었다.

다이어리를 뒤져도 내가 꽃을 받을 이유도,

내가 꽃을 누군가에게 선물할 이유도 없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직접 꽃을 그려보기로 작정했다.

한 때 집 한 채의 가격으로 매매되었던

튤립이 왠지 지금의 상태와 맞을 듯했다.

아무리 영원한 건 없다 해도 튤립의 가치 폭락은 너무 심해서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떨어진 튤립의 매력을

벌이 알아봐 주는 설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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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우리가 오르는 어떤 직위는 그것으로 얻는 실질적인 보수와 상관없이

그 직위에 딸린 외투, 조끼로부터 특별한 가치와 위엄을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육군 원수에게는 제복이,

주교에게는 비단 앞자락이,

변호사에게는 비단 가운이,

교구 하급 관리에게는 삼각모가 있다.

주교한테서 비단 앞자락을 벗겨보라,

아니면 교구 관리한테서 삼각모와 황금빛 레이스를 벗겨보라,

그들은 무엇이 되는가?

인간,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


-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발췌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나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꾼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이야기를 위한 꿈.

어제보다는 한 뼘 더 컸다는 인식을 하고 싶은 꿈.

꿈을 야금야금 먹고 소화시키는 하루!


잠을 자거나 졸면서 꾸었던 꿈과는 차원이 다른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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