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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07. 2024

흔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

버섯의 종류가 많은데, 왜 버섯을 그릴 때 언제나 표고버섯을 그릴까?


밤사이에 비가 다녀갔다고 

나뭇잎들과 땅바닥이 전해주었다.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지 않은 듯이 흐릿한 하늘이 

아침인사를 건넨 시간에,

 <불타는 금요일, 불금>을 외치면서 

토요일을 망쳤던 

시간이 완벽하게 지나간 증거인양 나는  말똥말똥했다. 


휴일에 약속이 없으면 

왠지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과 만나고, 우울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텔레비전 앞에서 죽치고 앉아 

과자나 과일을 먹어대기만 했었는데, 

어느 틈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의 운영을 잘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신기했다.



혼자 있어야 가능한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발견한 이후부터였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고, 운동을 하고 등등이 

모두 혼자 있을 때 가능한 일이고 

그런 일들을 꾸준히 하면서 누적된 결과물들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고 

하늘빛이 흐려서 오늘은 사색하기 안성맞춤인 날이다.




“저는 당신을 인간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발췌



사강의 생각과 내 생각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한 문장이다. 


고독은 형벌이 아니다. 

고독해야 닿을 수 있는, 이룰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과 만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셈이 아닐까? 

삶의 풍경이 모두 같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할까?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소개할 수 없는 영화 중에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곳,

 <농구할 때 공을 아무렇게나 던져도 언제나 공이 바스켓 안으로 들어간다> 

나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곳,

<만나는 사람마다 공손하고 서로 덕담만 나눈다>과 같은

마을이 배경인 드라마를 시청하던 

어린 친구 두 명이 

그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흑백에서 칼라로

마을 풍경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어린아이 두 명은 모든 색을 갖춘 아이였고, 

드라마 속 마을은 흑백이었는데, 

그 아이들이 마을에 도착한 후 

아이들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한 명 두멍,

볼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소프트웨어가 인공지능이 탑재되지 않았을 때라 

영상에 사용된 기술이 엄청난 효과를 냈던 작품이라는 생각도 했고,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시청자가 이해하도록 

감정이 생긴 사람의 볼 색이 발갛게 물들어서 

감정이 생긴 것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 연출, 

그 당시엔 혁신적인 표현력이라 느꼈었는데, 

다시 보면 식상할 수도 있다.

<매트릭스가 개봉했을 때도 나는 열광했었다>




사강의 생각은 어쩌면 

그 영화 속의 마을과 닮은 사람들 틈에서 살아서 

<흑백논리가 강세였던 시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던 시대>

윗 문장과 같은 표현을 했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사강은 <예술의 환상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문학이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믿게 하지만, 

진실은 그 정반대이다.

삶이 무정형적이라면, 

문학은 형식적으로 잘 짜여 있다,>라고 했었다. 


 그 말엔 깊이 공감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형식을, 틀을 깨려고 노력한 결과로, 

오늘날의 우리는 새로운 출구를 발견하는 게 

그 시대보다 훨씬 힘겹다고 느끼기에. 


사강의 글과 만나는 시간에 

햇살이 넘실넘실 창문을 넘어 들어왔고,

사강의 책을 덮었을 땐 이미 해는 기울었다.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발췌


책을 덮은 후 페퍼민트 파 한 잔을 마시면서

사강의 문장들을 되새겼다.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특정 작가의 생각과 대화하듯 

시간을 보내는 날이 있다. 

오늘은 브람스의 곡을 애정하므로,

프랑수아즈 사강과의 차 한잔?

선인들의 이야기에 주로 경청하는 편이지만,

아주 가끔,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만큼의 

모순을 발견하면 만남의 시간은 훨씬 길어지곤 했다. 

이런 시간은 고독해야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고독을 절대 형벌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인이다. 

현재를 즐기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므로 

어떤 선택이든 

자의적인 선택이라면 모두 현재를 즐기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지닌 이상한 관념 중 하나는 

버섯의 형태를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표고버섯을 떠올린다. 

표고버섯이 버섯의 대명사가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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