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상처들은 마음의 지문으로 새겨지지 않을까?
아침은 어김없이 밝은 얼굴로 나를 흔들었고,
여름이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하루하루 높아지던 기온이 오늘은 최고점을 찍고 기다렸다.
몇 발자국을 옮기기도 전에 덥다는 기분으로 산책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정호승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시를 카톡으로 받았다.
시를 음미한 이후부터
나는 걷는 길에서 만난 풀잎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지인의 낭송으로 들은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주변의 새소리까지 더하여
황홀이라는 완벽함을 만든 아침이었다,
시선을 풀잎과 나뭇잎에 맞추고 걷기를 끝마진 후에도 <상처>하는 단어는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상처>는 오늘의 화두가 되었다.
마음을 열어 시각적으로 꺼낼 재주는 없어서 이렇게 추상적인 접근을 해봤다.
마음은 밤하늘의 오로라와 닮았을 것 같다는,
바닷속 깊은 지점으로 가라앉는 물방울 같다는,
아니, 어쩌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같을 수도 있겠다처럼.
글과 함께하는 이미지는 그런 경로로 탄생했다.
살면서 내가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은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렸을 때는 상처를 꼭꼭 씹으면서 그 상처 속에 깊이 빠져들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처로부터 훌쩍 벗어나 새로운 기분을 만나는 날 발견했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어른이 된 시점인듯하다. 상처는 항상 관계에서 출발한다.
대인관계가 아닌, 사회와 나와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으므로
상처는 살기 위한 필수 요건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마저 한 날이다.
“그 눈빛! 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뜨겁고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을 때
타타는 달걀노른자로 만든 젤리를 쟁반에 담아 식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페드로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타타는 펄펄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이 후끈 달아올랐다.”
-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발췌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바로바로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상처는 마음을 집어삼키는 염증으로 증식할 수 있지 않을까?
몸에 염증수치가 높으면 쉽게 병균에 노출되듯이
마음에도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생긴 염증의 수치가 높으면
외부 여건에 쉽게 자극받아 분노 조절 장애나,
우울증과 같은 마음병에 노출되기 쉽지 않을까?
윗 문장에서 타타는 눈빛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강렬함을 느꼈듯이,
내가 받았던 상처 중에는 눈빛으로 상처를 받았었던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눈빛은 참 다양한 말을 건넨다. 모욕, 경멸, 사랑, 무시, 단어를 하나하나 나열하다 보니
눈빛이 건네는 말 중 따듯한 종류보다 차가운 종류가 더 많은 듯하다.
눈빛으로 받은 상처가 작은 상처일 때도 물론 있겠지만
그 눈빛이 누구의 눈빛이냐에 따라, 관계의 깊이에 따라 다르므로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상처도 있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우린 친한 친구였다.
아니 난 적어도 그 친구를 절친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게 보낸 차가운 눈빛에 소름이 돋았었다.
영문도 모른 채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받은 그녀의 눈빛이 너무 충격이었었다.
난 그녀에게 감히 왜 나한테 그런 눈빛을 보냈는지조차 묻지 못했다.
그리고 난 그녀와 결별했다. 어쩌면 나의 결별 선언이 또 그녀에겐 상처였을 수 있다.
이처럼 상처는 누가 먼저 주었느냐만 다를 뿐 결국 서로 주고받는 것일까?
물론 일방적으로 받은 상처로 기억하는 일도 있지만 면밀히 검토해 보면
나도 분명 상처받은 만큼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 확률이 높다.
“타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부엌을 통해 삶을 알게 된 사람에게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문에서부터 집 안쪽까지 연결된 거대한 세상은 타타의 손안에 있었다.
부엌 뒷문이나 안뜰, 밭 과수원 같은 세상은 완벽하게 타타의 것이었다.
언니들과는 정반대였다.
언니들에게 부엌은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 찬 두려운 세상이었다.”
-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발췌
단어마다 차이는 있지만, 단어 중 뒤집어 보면 음양처럼,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성장하는 듯하다. 상처를 마음의 지문으로 바라본 이유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특정 짓는 요소 중 하나인 지문,
손가락의 지문은 어떤 경로로 그려지는지 모르지만 마음의 지문은 상처로 만들어질 것 같다.
큰 상처는 생명선처럼 굵은 지문으로 남고,
자잘한 상처들은 손가락 마디마디의 지문처럼 새겨질 듯하다.
상처는 편협했던 나를 넓게 만들었고, 나약했던 나를 강하게 해 주면서 나를 성장시켰다.
아니, 나를 성장시킨 주체가 상처라기보다
내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성장했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에 구력이 생겼다. 상처를 쉽게 받지 않는다.
내게 상처가 아닐 때 상대에게 가해지는 상처가 될만한 말이나 행동도 없으니 무던한 상태라고 봐도 될까?
전혀 그렇지는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빈번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마음이 뒤집힐 때도 있다.
최근에도 난 모욕을 준 친구에게 상처가 될 말을 남겼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취한 말이었다고 변명은 하지만.
내 마음의 염증수치를 어떤 의사에게 물어봐야 할까? 생각하다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은 인연이 끝난 심리학박사인 친구가 내 정신건강이 양호하다고 진단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진단은 과거의 것이니 현재의 내 상태는
건강하다 아프다로 규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