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체부가 반가웠던 때가 있었다.
재산세를 내야 하는 마지막날이라 은행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 앞 신호등에서 빨간불이라 잠시 멈추었다. 멍하니 우체국 입구를 보다가 불현듯, 가을 우체국 앞에 서라는 제목의 노래가 떠올랐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윤도현의 음원을 찾아들었다. 역시 좋은 노래다.
너무 뻔하게 생각의 흐름은 편지로 이어졌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사적인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았던 것은, 벌써 몇 해 전의 일이다.
제자가 군대 가서 자대 배치를 받은 후 보냈던 편지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박상현, 글씨는 잘생긴 상현이의 얼굴처럼 반듯했다. 동글동글 예쁜 글씨체였다. 깨알만큼 작고 촘촘한 글씨로 빼곡히 채운 두 장의 내용은 큰 울림을 주는 감동이었고,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고, 물건을 곱게 다루는 성격이라 집은 작은데 물건이 많은 편에 속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지만, 그 꿈이 죽기 전에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물건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다. 어떤 사람은 이 점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일 듯하다.
버리지 못하는 물품 중 편지를 비롯한 엽서들이 있어서 상자 가득히 보관되어 있다. 가끔 상자를 열어 편지를 읽으면서 보낸 사람의 얼굴도 떠올리고, 안부도 궁금해하곤 하는데 내가 간직하는 편지 중 가장 오래된 편지는 30년 전에 받은 편지다. 그 이전의 것들은 정신없이 해외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라서.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이 헤어졌다. 대부분의 헤어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헤어졌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고 분야가 다르고 나이가 달라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간 인연들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한 인연들이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던 사람 중 나한테 편지나 엽서를 보냈던 사람은 그 오래 전의 편지를 통해서 사라졌던 그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그려지다 체취까지 느껴질 만큼 선명해져서 좋다.
“시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 마리오는 포구로 가는 동안 바다의 움직임을 뜯어보았다. 파도는 많이 있었으나 화장한 정오였으며 부드러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미풍이 산들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메타포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의 모든 것이 웅변적이었건만, 마리오는 침묵만을 지켰다. 너무도 굳게 침묵을 지켰기에 자신과 비교하면 돌멩이들까지도 수다쟁이 같았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발췌
현대 문화를 일컬어 쿠키 걸쳐라 부른다. 대중이 아주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콘텐츠들만 소비해서 점점 더 크리에이터들의 결과물들이 짧아지고 있다. 웹툰, 게임, SNS를 비롯해 어쩌면 블로그도 쿠키컬져에 해당될 수 있는 매체일 것이다. 인터넷의 보편화 이전의 문화에서는 편지가 <간식> 같은 문화였을까? 생각이 이런저런 일로 옮겨 다니다 보니, 이렇게 이미지를 간식으로 만들었다.
언어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어떤 날은 다양한 언어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와 머리와 가슴을 뒤덮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모두 사라져서 허허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체부인 마리오의 심정이 이해된다. 외부의 자극도 매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극명하게 차별화되는 이유도 어쩌면 언어들이 부리는 마술일 수 있다. 아닌가? 미토콘드리아가 지시를 멈추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DNA도 아니고, 염색체도 아닌 미토콘드리아?
생각엔 날개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옮겨 다니니 말이다. 어쩌면, 일기를 쓰듯 매일 짧게라도 생각을 글로 남기고, 선인들의 고귀한 문장들을 발췌하는 이유는 날개 달린 언어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막막한 상황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조금이라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 믿고 하는 행동?
“천둥이 몰아치듯 정치가 나의 일을 중단시켰다. 민중은 내게 삶의 교훈이 되어 왔다. 나는 민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인 특유의 수줍음을 띠고, 수줍어하는 사람답게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민중의 품 안에 안기고 나면 내가 변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대다수 참된 민중의 일부고 인류라는 거대한 나무에 달려있는 이파리 중 하나인 것이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발췌
꽤 오래전 봤던, 재밌게 봤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재치 있으면서 공감하기 쉬운 대사들이 참 많았었다. 그중에 나를 추앙해!라고 한 대서는 강렬했고, 서울은 계란 노른자, 경기도는 계란 흰자로 표현했었던 것은 희극적이었고,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10원짜리 동전에 비유하면서 산으로 돌아갈 것 같아?라는 대사는 다분히 철학적이었다. 이 외에도 시청할 땐 성큼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던 대사들이 있었는데 기억하기엔 너무 오래되었나? 이 정도의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작가 이름이 박해영이었나? 참신한 표현력을 많이 발견했었던 드라마였다.
감각적으로 언어를 운영할 줄 아는 사람이나 사유의 깊이를 쉽게 풀어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오랜 훈련으로 내공이 단단한 사람같이 느껴져서? 그러한 연유로 손글씨 편지를 그리워한다. 편지를 쓰는 일도 중단된 지 이미 오래고, 받은 지도 오래되어서 우체국이나 우체부가 그리움과 기다림의 장소와 사람이 되었을 수 있다. 문자나 이메일 그리고 SNS로 빠르게 소통하는 시대라 기다림이라는 과정이 사라져서 더욱 편지가 그리운 소재일지 모른다.
오늘밤은 편지가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다시 그리운 사람들 한 명 한 명 소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