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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09. 2024

펑크, 식물 펑크

자동차의 왼쪽 앞 타이어가 펑크 나서 주저앉았다. 바퀴 펑크가 식물 펑크




약속 시간에 맞추어서 집에서 나왔는데, 

내 자동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이 보여 바퀴를 봤다. 

펑크, 펑크 난 자동차 왼쪽, 운전석의 앞바퀴가 주저앉았다. 

주차된 상태에서도 펑크가 날 수 있음에 놀랐고, 

운전 중에 펑크가 난 것이, 아니라 

사고의 위험에서부터 벗어난 안도감이 밀려왔다. 

보험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고장 신고를 먼저 한 후 

출동 서비스를 기다렸다. 




출동 기사가 30분 내로 오겠다는 연락을 주었지만, 

바퀴를 교체하려면 시간이 더 소요될 듯해서 

약속 취소를 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생각의 흐름도 기류를 타는지,

타이어 펑크가 식물 펑크로 이어지다

하늘로 날아가는 상상으로 바뀐다.

자동차가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바퀴가 펑크 나도 

약속을 취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출동 기사가 도착했는데, 

타이어를 가져오지 않아서 처음엔 어리벙벙했다. 

이어서 내 차 트렁크에 

스페어타이어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스페어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와 살짝 다른 것도 처음 알았다. 

나의 어설픔 행동을 보고 출동 기사는 동정의 눈빛을.


운전 경력 30년, 

무사고 운전 30년이라는 타이틀이 이처럼 허술했다. 


바퀴가 왜 다르냐고 질문하는 내게 

출동 기사는 

<임시방편이라서요>라고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기아 정비소로 가서 타이어 교체를 하려고 했더니 

출동 기사는 타이어 전문 업소로 가서 교체하라고 권했다. 

<출동 기사의 조언은 동정에서 우러나오는 듯했다>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당연했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무작정 기아 정비소로 향했으므로 

타이어 전문업체는 처음 가봤다. 




마침 행사 기간이라 3+1이라고 말했다. 

다른 바퀴들은 아직 교체 시기가 안 된 것 아니냐는 내 질문에, 

바퀴 하나만 교체하면 자동차의 중심이 맞지 않는다면서 

앞바퀴 두 개만 교체하는 방법도 있지만, 

행사 기간이니 

아예 돈을 조금 더 보태서 바퀴 4개를 모두 교체하는 게 

더 이익이고 좋다고 했다.



운전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므로 

자주 정비소를 찾는 나는 

정비사들의 말이 때론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동차 전문 가고 나는 비전문가라서 

그들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사실 타이어 상태가 나쁘지 않고 

요즘은 장거리 운행을 잘하지 않는 데 

바퀴 4개를 모두 교체하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의 말을 따라서 바퀴를 모두 교체했다.




“동정도 말이야, 제인, 어떤 사람한테 받는 것은, 

유해하고 화가 나는 거지. 

그런 건 보내준 사람의 입에다 도로 집어 동댕이쳐도 괜찮을 정도야, 

그러나 어떤 종류의 고통은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마음에 고유한 것이오. 

고통을 견디어 낸 사람에 대한 무지한 경멸이 뒤섞인, 

남의 불행을 들을 때 생겨나는 

자기 본위 적인 고통이란 말이오.”


-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발췌



자동차 바퀴를 교체하고 

집으로 되돌아오기 싫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바퀴 교체하는 시간에 읽으려고 책을 가지고 나왔으므로 

도서관에 가서 읽다 새로 입고된 책들도 살펴보면 좋을 듯했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많았고 

실바람이 부는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살랑댔다. 


나뭇잎이 살랑 흔들릴 때마다 

매끈한 나뭇잎은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했다. 

신호등 앞에 멈추어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속으로 <쟤네들이 신났네? 기분이 좋아 들썩이는군> 하고 말했더니 

나도 덩달아 나뭇잎들처럼 신났다. 

어쩌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레몬트리> 때문에 신났을 수도.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는데 마침 차 한 대가 도서관에서 나왔다. 

나는 그 차가 빠진 자리에 주차하는 행운? 

사실 주차공간이 협소해서 도서관 주차장이 아닌 

공영 주차장에 대고 걸어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날씨가 덥지 않을 때는 산책 삼아서 걷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뙤약볕 아래로 걷는 일은 꾀가 나고 싫다. 

주차를 도서관에 했으니, 

이래저래 오늘은 운수대통이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는 타이어 펑크를 기억하지 않았었다. 

펑크, 펑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황보령의 노래

<식물 펑크>가 자동으로 기억난다. 

그녀의 목소리가 허스키하면서도 독특해서 좋아했고, 

노래의 곡과 가사가 모두 좋은데,  활동이 뜸한가? 

요즘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나를 이끄는 길잡이입니다. 

나의 양심은 한정이 없습니다. 

남보다 높이 올라가고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 

나의 욕망은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나는 인내, 노력, 근면, 재능을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들이 위대한 목표를 달성하고 

높은 명예까지 올라가는 수단인 까닭입니다.”


-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발췌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면서 보낸 날은 많이 피곤했다. 

마치 나를 거스르는 행동을 많이 한 듯한 느낌? 

감정을 앞세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감정보다 이성이 우선이겠지만, 

이성과 감정의 조화로운 삶이 제일 아닐까? 

감정적으로는 하늘을 날고 싶었던 날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곧 자동차에도 날개가 달리겠지?


자동차 바퀴가 펑크 난 날을 기념해서 

오늘은 오랜만에 황보령의 <식물 펑크>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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