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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 Jun 25. 2017

사람이 찍힌 최초의 사진

'가장 사소하고 가장 일상적인 몸짓'

      사진 그까이 것 대충 셔트만 퍽퍽 누르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참 막돼먹은 생각이다. 사진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서야 아, 이렇게도 한 번 찍어볼 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 이 후회의 뒤늦음을 좀체 앞지를 수 없다. 세상에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로 느끼게 된다. 사진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 사진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최초의 사진’과 ‘인간의 형상이 찍힌 최초의 사진’에 대해서 말이다.     


최초의 사진

니에프스가 찍은 최초의 사진. 니에프스는 이것을 핼리오그라피 즉 태양광선으로 그리는 그림이라 불렀다. 천연 아스팔트가 빛의 노출에 따라 굳는 성질을 이용했다고 한다.

    1827년 니에프스(Joseph-Nicephore Niepce)은 최초의 사진을 찍었다. 무려 8시간에 걸쳐 찍었지만, 현상된 것은 작업실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비둘기 집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벽과 바닥이 전부였다. 그는 더 선명한 사진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1833년 68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사진기를 발명하는 업적을 세웠음에도 니에프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기에 대한 반감과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그가 최초의 사진을 찍은 지 근 100년이 흐른 후에도 《라이프치히 신문(Leipziger Zeitung)》의 한 칼럼은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똑같이 모방하는 기계는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곧 신성모독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신문의 비난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사진기란 정말 마법과도 같은 장치다. 직접 그리지 않고 스스로 그려지는 장치! (여러분은 이런 사진기가 신비롭지 않으신가요?) 이런 것을 최초로 생각한 니에프스는 아무도 시도한 적 없고, 아무도 상상조차 한 적 없는 일에 매몰되어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얼마나 많은 실패 속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던 것일까. 그는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며 손가락질 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비록 그것이 몰락이라 할지라도 그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는 사진기를 발명하겠다는 노력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지만 그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끝내 몰락했고, 그에게 영광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니에프스가 찍은 최초의 사진은 그가 느낀 절망감만큼이나 어둡고 우울하다.    


인간의 형상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진

1838년 다게르가 찍은 탕플대로. 인간의 형상이 찍힌 최초의 사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왼쪽 하단에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흐릿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니에프스가 최초의 사진을 찍었다면 다게르(Louis-Jacques Mandé Daguerre)는 인간의 형상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진을 찍었다. 그가 사진을 찍은 곳은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부터 파들루 광장에 이르는 405m가량의 탕플대로(Boulevard du Temple)였다.

파리의 품행과 장면 : 탕플 대로, 소극장들©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이 대로는 18세기부터 이 세기가 저물 때까지 유행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수많은 카페와 극장이 있었고 사람들과 마차로 즐비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다게르가 찍은 사진 속에는 군중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군중을 찍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사진기술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초창기 사진은 은판을 필름으로 사용하는 은판사진 기술을 사용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은반지, 은수저와 같은 것들을 오래 사용하다보면 탄 것처럼 검게 변한다. 그 이유는 은이 빛에 민감해서 쉽게 부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감광현상(感光, photosensitization)이라 한다. 은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사진이라는 것을 발명하긴 했지만 움직이는 것을 찍기엔 그 기술이 턱없이 부족했다. 왜냐하면 은판을 빛에 2~3분가량 노출시켜야 겨우 사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게르가 이 사진을 찍을 때 움직이지 않은 단 한 사람이 있었다. 어이없게도 그 사람은 구두를 닦고 있었다. 인류 최초로 찍힌 인간의 모습이 겨우 구두 닦는 모습이라니…… ‘우프다’는 말은 이럴 때를 위해 있는 말인 것 같다. 철학자 아감벤은 이 사진을 위해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주석을 달았다.

   


    최고의 순간에,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는 자신의 가장 소소하고 가장 일상적인 몸짓이 영원히 주어진다. 그렇지만 사진기 렌즈 덕분에 그 몸짓은 이제 삶 전체의 무게를 지게 된다. 저 대수롭지 않고 무의미하기까지 한 자세에 존재의 의미 전체가 모이고 응축되는 것이다(조르조 아감벤, <<세속화 예찬>>, 김상운 옮김, 난장, 2010, 35면.).    

    

    구두를 닦는 남자의 모습은 분명 사소하고 무의미하게 보인다. 그러면 이렇게 묻자. 의미 있는 몸짓이란 어떤 것인가? 의미라고 불리는 것은 우리가 부과한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하다면 무의미란 우리가 아직 부과하지 못한 가치다. 그런 점에서 무의미는 뒤늦은 후회처럼 찾아오는 의미의 미래다.


*대문 사진: 해가 넘어가 어둠과 밝음이 경계를 짓고 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찍었다.

*나머지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글은 <경북매일>에 올린 것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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