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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 Jul 01. 2017

감동의 도가니탕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2015, 410~411면).    


    안 읽으면 안 읽었지, 책 한 권을 이렇게 오래도록 붙들고 읽긴 처음이다. 처음엔 안 읽혀서 읽으려고 무진 애를 썼고, 중간쯤 읽었을 땐 흠결을 찾아내기 위해서 애를 썼고, 나중에는 나 같은 전공자가 볼 때 이건 소설이 아니라 시트콤이야, 라고 결론을 냈지만, 그럼에도 오베라고 불리는 이 남자가 궁금해서 자꾸 읽었다. 

    잠깐, 이 책 어디가 불만이냐고? 그건 이 책 거의 모든 곳에 있는 저 재기 넘치는 비유적 표현들 때문이다. 뭐 이런 식이다.    


오베는 마치 고백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오랫동안 상자를 바라본다(9면).
대신 그는 병원까지 가는 내내 그녀의 배를 계속 흘끗거렸다. 좌석 커버에 별안간 양수라도 흘릴까봐 신경 쓰여 죽겠다는 듯(165면).
오베는 핸드 브레이크까지 오기 위해 군용 장애물 코스를 뚫고 와야 했던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누가 눈에 레몬즙을 뿌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얼굴 근육이 뒤틀려 있었다(318면).    


이렇게 현란하고 발랄한 말들을 남발하면 읽는 사람은 피곤하단 말이오, 작가양반!     


    결국 오늘에서야 다 읽었는데, 이걸 읽겠노라고 커피숍에서 다섯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었다. 마지막 백 쪽 정도를 남겨 놓고서는 다 큰 어른이, 게다가 덩치도 큰 인간이 쪽팔리게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 엉엉 울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참~~~

    원래 좀 감상벽이 있어서 감동적인 이야기에 쉽게 반응한다. 이런 따뜻한 감동이라니 오랜만에 경험하는 이 따뜻함이라니. 해피엔딩 따위는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더 쉽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잘 팔리는 소설이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의 스틸컷. 출연진들이 죄다 모여 있어서 가지고 왔다. 가운데 노인이 오베고, 그 옆에 임신한 여성이 파르바네다. 파르바네는 아랍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앗! 소냐가 없네~~

    우리가 드라마나 소설을 보는 이유는 어쩌면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말 막장스러운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쟤들은 보나마나 자매야! 하고 한심스러운 듯 추측을 하고서 결국 그 연인들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 거봐 내 말이 맞지, 하고 화를 내지만, 내심 그런 식으로 감정을 분출하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집에서 살아가는 것을 유추적으로 설명한 이 부분. 그래, 위로 스크롤을 돌리기조차 귀찮은 당신을 위해 여기 한 번 더 인용해주지. 잘 읽어보시길.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2015, 410~411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당신도 사랑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지. 어쩜 내가 느꼈던 걸 이렇게 잘 잡아내지, 라고 생각했을 테지. 이것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통찰을 가졌다면 작가양반, 당신의 진정성을 인정해주겠네, 라고 말하는 걸로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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