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자를 선망하는 과정
돈이 아이를 어떻게 좌절시키는 방법
1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글쓰기 시간이었다. 뭔가 재미있는 주제로 글을 쓰게 하고 싶어서 <1학년 때 갖고 싶었는데 끝내 못 가져서 2학년 때는 꼭 갖고 싶은 것>에 대해 써볼 테니 한 가지씩 말해보기로 했다. 이럴 때 예상되는 글감은 장난감이나 학용품처럼 자신의 생활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자연스럽게 포켓몬 카드, 레고, 게임기 같은 익숙한 말이 나오는데 한 아이가 불쑥 집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과는 결이 다른 글감이다 보니 잠시 분위기가 술렁이는데 맞은편 아이가 옅은 한숨을 쉬며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야, 너 그거 돈 엄청 많아야 돼. 삼천만 원 정도 있어야 될걸."
다른 아이도 끼어든다.
"야, 삼천만 원으로 안 돼. 선빈이네 축사에 있는 소 다 팔아도 못 살걸. 요즘 집 값이 얼마나 비싼 지 아냐?"
선빈이도 한 마디 한다.
"야, 얼마 전에 우리 아빠가 송아지 오백만 원 받았어."
아이들이 놀란다.
"헐. 오백만 원? 와, 쩐다."
오백만 원이 많아서 놀라는 건지 그 반대라 그러는 건지 잘 몰라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려는데, 집이 필요하다고 한 아이가 갑자기 목청을 높인다.
"우리 내년 봄에 전세 올려 줘야 되니깐 그러지. 아님 이사 가야 돼!"
"헐. 넌 유치원 때 이사 왔으면서 또 이사 가냐?"
"야, 그럼 전세 올려줄 돈이 없는데 어떡하냐?"
"야, 니네 아빠가 돈 벌면 되지, 으이구."
"우리 아빠가 돈 벌어도 안 된다니깐. 고모랑 할머니가 돈을 가져가서."
"헐. 고모랑 할머니가 돈을 가져갔어? 와, 쩐다."
"야, 고모랑 할머니가 다시 갚겠지. 으이구"
그 말을 들은 아이들 표정이 가라앉는다. 그러자 한 아이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그 아이를 위로한다.
"야, 그럼 효자 8동 아파트로 이사 가. 우리 작은 아빠가 거기 산단 말이야. 거기 아파트 싸다 그랬단 말이야. 맞죠, 선생님?"
"아, 그런가? 선생님이 거기 안 가 봐서 잘 모르지만 ㅇㅇ이네 엄마 아빠가 계획을 세우실 것 같은데?"
아이의 고민은 자기네 집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이사를 몇 번 했는데 이사할 때마다 도시 중심지에서 멀어져 온 집안 형편이 마음 아팠을 것이다. 집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여러 번 봤을 것이다. 그 결과 부모님의 현실적인 염려가 투사되고 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부모님이 돈 때문에 낭패를 본 사연을 지닌 경우가 종종 있다. 돈 때문에 부모님이 싸우거나 친척, 또는 이웃의 빚 독촉을 받고 괴로워하는 걸 본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불안해한다. 이때 느끼는 불안은 어른이 느끼는 그것보다 크다. 그 불안을 좀 덜어보려고 부모 말고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 중 하나인 담임과 나누고 싶은가 보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얘기를 쏟아 놓는다.
"우리 아빠가 어제 아저씨들이랑 술 먹구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빠가 술값을 다 냈단 말이에요. 엄마가 아빠한테 막 뭐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아빠가 엄마한테 그만 좀 지랄하라 그랬잖아요."
"할아버지가 술 먹고 오토바이 타다가 꼬라박았단 말이에요. 다리가 똑 뿌러졌잖아요? 그런데 아빠가 돈이 없으니깐 할아버지한테 막 뭐라 그랬잖아요? 할머니가 울었잖아요."
"우리는 쪼끄만 집에 여섯 명이나 사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ㅇㅇㅇ는 엄청 좋은 집에 살더라구요. 정말 좋겠죠. 나도 그런데 살면 좋은데. 그래서 엄마한테 우리도 저런데 이사 가면 좋겠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엄마가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서 살어, 이러잖아요."
아이들 대화에 나오는 어른들의 모습은 학교에서 배우는 어른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비록 가난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부모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더 약자인 다른 가족(엄마, 할아버지)에게 떠 넘기거나 잘 사는 사람을 시기하는데 이런 모습에 담긴 어른의 속마음을 알아채는 것 같다.
이런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대가로 먹고사는 나는 이러러 때마다 밥값을 못한다. 꿈을 가지게 하라고, 긍정의 힘으로 자라게 하라고 교육 지침서는 끝없이 주문하지만, 돈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할지 막막하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간 좋아질 거야. 그러니 희망을 가지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란다. 이렇게 말하자니 메워지지 않을 아이들의 공허함이 부끄럽고 세상을 비관의 시선으로만 보지 말고 언젠간 좋은 일 오겠지, 생각하라고 가르치자니 면목이 안 선다.
높은 빌딩이 많고 물자가 넘쳐나는 이 풍요로운 나라에서 부모들은, 이 사회는, 국가는 어찌하여 겨우 1학년밖에 안 된 아이들이 저런 걱정을 하게 만드는가. 설사, 부모의 형편이 어렵다 하더라도 자기 아이에게는 곤궁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지금은 형편이 어렵지만, 열심히 일해서 우리 식구 모두 잘 살게 될 거라고, 그러니 너도 열심히 자라라고 말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난 아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좋은 쪽의 희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결핍에 익숙한 아이들이어서일까, 부자들에 대한 선망이 몸에 배 있다. 그래서 나에게 돈이 더 있다면 부자들처럼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멋진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의 대리만족일까, 미디어에는 부자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한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에 대한 선망이 더 커 보인다.
어떤 사업가가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성공 비결을 말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돈 벌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고 그게 동기가 되어 습관이 바뀌더라고. 그래서 성공했다고. 그러자 진행자가 묻는다.
회장님도 고난을 많이 겪으셨을 텐데, 그럴 때마다 극복하셨잖습니까? 그 밑바탕에 깔린 힘이랄까... 저력이랄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까지 기업을 이끌어 온 힘일 텐데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 사회에 지금 꼭 필요한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사업가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에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한다.
음... 결국 긍정의 힘이라고 해야겠지요. 앞으로는 잘 될 거라는 긍정의 힘 말입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카메라는 그 사람이 사는 집의 단정한 정원과 이층 집에 넉넉히 들어찬 장식물들과 고급 가구가 있는 서재를 비추며 끝난다.
사업가가 돈을 벌도록 도운 노동자의 땀은 감춰진 채 리더의 정신 자세를 칭송하는 계몽을 볼 때마다 가증스러운 생각이 드는 건 어딘가에서 이걸 볼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올라서다. 자기 부모와 비교할까 봐, 그래서 괜한 실망을 느낄까 봐, 자기 엄마 아빠가 노력도 안 하고, 긍정의 힘도 갖지 못해 자기까지 가난하다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을 거두고 원망할까 봐.
돈을 벌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자본인 이 사회에서 개인의 가난이 어찌 개인만의 책임인가.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어려운 지금, 용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요행을 기다리게 만드는 사회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상처받을 일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