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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Sep 16. 2022

아이가 수치심을 학습하는 순간

수치심 vs 자율성


월요일 아침,
아이들끼리 주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 (아이1) 나 주말에 캠핑 갔다 왔어.

- (아이2) 와, 좋았겠다. 난 두 번 밖에 못 갔는데. 가서 뭐 했어?

- 게임했어.

- 헐. 게임? 그 좋은 데 가서 게임을 하다니!

- 왜, 게임이 뭐 어때서?

- 야, 그런데 가면 캠핑을 해야지, 왜 게임을 하냐?

- 캠핑도 했어. 그러면서 게임도 했다니깐. 많이는 안 하고 아빠랑 엄마랑 텐트 치는 동안만 쪼금 했어.

- 난 텐트 내가 치는데. 그리고 캠핑 가면 핸드폰 안 봐. 엄마랑 약속했거든.

- 헐. 그럼 게임 못하냐? 완전 에바다!(나쁘다는 뜻)

- 응.(아쉬워하며) 근데 게임 안 해도 쫌 재미있어.

-(내가 끼어들며) 뭐가 재미있는데? 게임보다 재미있어?

- 그럼요. 텐트 치는 거요. 그거 엄청 재미있어요. 아빠가 그러는데 집 짓는 거랑 똑같대요.

- (내가 놀라는 척하며) 너 텐트도 쳐? 와! 2학년이 텐트를 치다니!

- (우쭐대며) 텐트 칠 땐 아빠가 쪼끔 도와주기는 해요. 그래도 접는 건 제가 혼자도 해요. 진짜로요.

- (게임했다는 아이가) 야, 뻥치지 마. 니가 어떻게 텐트 치냐?

- 나도 칠 수 있어. 별로 안 어렵던데?

- 뻥 치시네. 폴대랑 끈이랑 니가 다 묶냐?

- 폴대는 아빠가 잡아주니까 묶지. 근데 끈은 나 혼자서도 묶어. 나 8자 매듭도 알거든. 아빠가 갈쳐줘서.

-(내가 또 끼어들며) 오~ 매듭도 알아? 선생님은 매듭 잘 모르는데.

- 제가 갈쳐 드릴까요?

- (부탁하는 표정으로) 아이고, 그러면 참 고맙지. 선생님도 캠핑 가면 써먹어야겠다.

- 그럼 제가 알려드릴게요. 아빠한테 말해서 내일 텐트 줄 가져올 게요. 저 진짜 매듭 알아요. (게임한다는 친구에게) 너도 배우고 싶으면 내가 알려줄게.

- (반색하며) 진짜지? 그럼 나도 우리 아빠한테 말해서 텐트 줄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볼게. 근데 안 될 수도 있어.

-(내가 끼어들며) 안 될 수도 있어?

- 네, 텐트랑 타프 같은 건 제가 만지면 안 될 수도 있어요. 지난번에 팩 잃어버려서... 아빠한테 디질 뻔 했잖아요.

- 아, 그랬어?

- 또 제가 폴대 잡고 있다가 넘어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동생이 다칠 뻔했거든요. 그래서 엄청 혼나고.


-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 네, 그래서 아빠가 저더러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게임이나 했죠.

- 아빠는 네가 위험할까 봐 그러셨나 본데?

- 네, 저도 아는데... 그래도 해보고 싶긴 해요. 내가 잘 붙잡고 있었으면 됐을 텐데... 제 잘못이죠.

- 근데 너도 깜짝 놀랐을 것 같아. 네가 일부러 동생 다치게 할려고 일부러 넘어진 건 아니잖아.


- 그랬죠. 근데 안 놀란 척했어요.


- 왜?


- 제가 잘못했으니깐요. 놀란 척하면 더 혼날 수도 있어요.


- 더 혼나?


- 네. 알면서 일부러 넘어진 줄 알 수도 있으니깐요.


- 그럼 선생님이 지금이라도 아빠한테 말해줄까?

- (망설이다가) 음... 선생님이 말하고 싶으면 하세요.


- 그럼 뭐라고 말할까?


- 제가 똑바로 안 잡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 동생이 다칠까 봐 놀랐었다는 것도 말씀드릴까?


- 네, 근데 안 믿을 수도 있어요.


- 아, 그래?


-네. 동생이 옆에 있는데도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서 있어서 사고가 났으니깐요.


- 아무 생각 없이?


- 아빠가 그렇게 말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서 있다고.


- 그때 네 마음은 어땠어?


- 억울했죠. 쪼금. 왜냐하면 제가 아무 생각 없던 게 아니라 동생이 보행기 타는 거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뱀이 나오면 물릴 수 있잖아요.


- 동생이 뱀이 물릴까 봐 걱정하느라 폴대를 잘 못 잡았구나?


- 네.


- 아빠한테 말씀드렸니?


- 네. 그랬다가 욕만 먹었잖아요. 폴대 잡을 때는 정신을 거기에 쏟아야지 멍청하게 뱀 나오나 보고 있냐고. 근데 엄마가 그러는데 산에 뱀 나올 수 있대요. 말벌이 쏠 수도 있고.






저학년 아이들은 자기가 뭐든 잘할 수 있게 태어났다고 믿는다.(전능감).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려고 한다. 이 시기를 잘 이용하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시도하는 것을 격려하고 칭찬하면 아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멋진 일, 좋은 일,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자율성 학습) 반대로 금지나 면박을 당하면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옳지 않은 일, 나쁜 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치심 학습)

두 아이의 대화를 들어보면 캠핑이라는 경험을 통해 한 아이는 자율성을, 한 아이는 수치심을 배운 것 같다. 자율성을 배운 아이는 캠핑 자체를 즐길 줄 알며 심지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8자 매듭법을 가르쳐 주는 일)

반면, 다른 아이는 캠핑을 가서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몇 번의 실수를 통해 아빠의 신뢰를 잃어서 텐트 치는 일에서 제외당한 아이에게 놀거리는 게임뿐이었을 테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건전한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 대신 게임으로 밀려난 아이는 결국 회피를 배웠다. 자신이 폴대를 쓰러뜨린 일을 수치심으로 기억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아빠가 아이를 야단치는 과정에서 다소 감정적이었다는 걸 아이가 간파했다.(아빠에게 야단맞은 사실에 대해 억울해하고 반항심을 보이고 있다.) 어릴 때 한 번 어그러진 관계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빠가 아이에게 속마음(아이의 부주의한 행동이 동생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했던 마음)을 털어놓고 간적으로 화가 나서 심한 말(멍청하다는 표현, 아이의 해명을 무시하고 화낸 것)을 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애초에 폴대를 쓰러뜨린 일을 2학년 아이가 흔히 할 수 있는 실수로 인정하고 다음엔 어떻게 하면 안 쓰러지도록 잡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다면, 동생을 염려하는 마음을 기특한 일로 응대했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아빠의 넓은 이해심에 감사하며 자기도 그런 성품을 가지려 노력할 것이다. 또 동생을 더 세심하게 살피는 오빠로 성장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고를 낸 아이를 나무랄 게 아니라 아이가 언제든 폴대를 쓰러뜨리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게 동생을 안전한 곳에 있게 하면 된다. 아이가 마음 놓고 실수를 통해 자기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아이는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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