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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Sep 14. 2023

1학년 아이들이 가게 놀이(나눔 장터)를 대하는 법

경제 개념은 어떻게 배우나?


1학년 <가을> 교과에 나눔 장터가 나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의 협조 덕분에 잘 끝나서 후기를 올립니다. 

나눔 장터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공부하는 과정에 나옵니다.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우는 공부지요. 내 물건을 잘 팔려면 친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친절하지 않으면 고객을 잃겠지요. 장터 놀이는 모두를 기업인의 마음으로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여기에 약간의 장치를 더한다면 사회성뿐 아니라 경제 개념과 돈의 가치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임의로 규칙을 정해보았습니다.

- 일단 구입하면 환불은 불가(물건을 신중하게 고르라고). 다만 다른 친구에게 파는 건 괜찮음.

-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은 2000원을 넘지 않기. 다만 내 물건을 팔아서 번 돈으로 재구매는 가능(통화량 조정으로 인플레이션 방지)

- 물건이 많은 경우 친구를 '알바'로 고용할 수 있음.(이 경우 임금 협상을 사전에 해야 함)

- 사려는 친구가 많으면 가격을 올릴 수 있음. 사려는 친구가 없으면 가격을 내릴 수 있음(수요-공급의 법칙, 시장원리)

- 돈을 안 가져온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으나 문서로 근거(언제 갚을지)를 남겨야 함(금융 대출)

- 친구에게 싸게 산 물건을 다른 수요자가 있을 경우 웃돈 얹어 판매 가능(도매-소매)


(나눔 장터) 가게 놀이가 처음인 아이들이 많아 아침부터 기대감에 교실이 들썩였습니다. 깜박 잊고 준비가 안 된 어린이도 있었지만, 친구들의 배려 덕분에 다들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놀이를 관찰해 보니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아이가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익힌 경제관념이 보이는 순간이었는데요. 만 6년을 살아온 1학년 아이들이지만 아이에 따라 경제관념의 유무,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여러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먼저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들의 경우로 아직 경제 개념을 학습하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 물건을 팔고 나서 너무 싸게 팔았다며 다시 물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눈물짓는 아이

- 자기 물건을 가방에서 꺼내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의 물건을 구경 다니는 아이

- 친구들 물건은 팔리는데 자기 물건은 안 팔려서 눈물짓는 아이

- 친구가 깎아달라는 요구에 쉽게 응하는 아이

- 자기가 번 돈이 너무 많다며 친구들에게 그냥 나눠 주는 아이

- 안 팔리고 남은 물건들을 "이거 가질 사람?" 하면서 나눠주는 아이

- 친구에게 산 물건을 다른 친구에게 그냥 주는 아이

- 돈이 남았다며 300원짜리 물건을 굳이 500원을 주고 사는 아이

- 친구들에게 산 물건이 가방에 다 안 들어가자 주변 아이에게 그냥 주는 아이

이 모습을 통해 대부분의 1학년 아이들은 자기 물건(돈)에 대한 소유개념이 약한 걸 알 수 있습니다. 가져온 물건(재화, 상품)이나 부모님께 받아 온 돈 2000(화폐, 가치 교환 수단)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약한 거지요.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친구에게 줘버립니다. 또 재화와 화폐가 오고 가는 시장은 단순한 '놀이'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관념은 다른 상황에도 드러나는데 연필이나 지우개를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거나 자기 물건을 친구에게 그냥 주고 다시 사려는 모습니다.

반면에 소수지만(20명 중 6명) 어른 못지않은 경제 개념과 시장 원리까지 터득한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물건을 정리하고 호객으로 관심을 끄는 아이

- 자기 물건이 안 팔리자 가격을 낮추고 인기 높은 물건은 가격을 올려 파는 아이

- 깜박 잊고 물건을 안 가져왔지만 물건을 많이 가져온 아이의 '알바' 역할을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물건을 사서 경매에 올리는 아이

- 친구들이 자기 물건에 관심을 안 갖자 일일이 찾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시도하는 아이

- 물건이 잘 팔려 계산이 급하자 친구를 알바로 고용해서 계산을 맡기는 아이

- 친구에게 싸게 산 물건을 경매에 붙여 200원의 이익을 얻은 아이

- 고객이 안 오자 가게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장사를 시도하는 아이

- 돈이 남아 있지만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겠다고 말하는 아이

이 아이들의 행동에는 어른의 경제 활동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종잣돈을 마련하려고 알바를 선택하거나, 반대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구를 고용하고 수요에 따라 가격이 변동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군요. 장사가 잘 되는 곳을 찾아 옮겨가는 적극성도 보이고 다양한 판매 방법(방문 판매, 경매)을 모색합니다. 그렇게 번 돈의 가치를 이해하기에 자기 욕망을 조절할 줄도 알아서 필요 없는 물건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줄도 압니다. 같은 1학년이지만 이런 차이를 보이는군요.


가게 놀이 끝나고 경매도 해보았습니다. 원하는 어린이 중 자기가 팔고 싶은 것 1개를 골라 앞에 나와서 물건을 설명하고 100원부터 시작해서 100원씩 호가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이 상황에서 물건의 가격이 싼지 비싼지 고민하지 않고 계속 손을 들어서 비싼 가격을 주고 낙찰받았지만 잠시 놀다가 친구에게 줘버리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친구들이 더 높은 호가를 유지하도록 경쟁을 부추겨 높은 가격을 받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경제 개념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다양한 모습으로 가정에서 아이의 경제 교육을 경험한 아이가 빛나는 순간이었지요.


* 놀이가 끝난 다음 좋았던 점을 발표해 보았습니다.
- 내 물건을 팔 수 있어서 좋았어요.

- 친구들이 좋은 물건을 가져와서 싸게 샀어요.

- 예쁜 물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많이 가져와서 고마웠어요.

- 물건을 잘 팔아서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분이 좋아요.

* 돈을 많이 번 친구들을 소개하고 그 비결도 들어보았습니다.

- 처음엔 200원 받을라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3명이나 사고 싶어 해서 '그럼 누가 300원 줄래?' 물어봤죠. 그래서 300원에 팔았어요. 100원 더 벌었으니까 이익이죠.

- 저는 책이랑 장난감 가져왔는데 책은 하나에 200원, 장난감은 400원 받았어요. 근데 책이랑 장난감이랑 원래 살 때는 값이 똑같았거든요. 다음엔 무조건 장난감 가져오려고요. 장난감 팔면 책을 두 권 살 수 있잖아요.

- 저는 어제 미리 애들한테 포켓몬 카드 주문받았어요. 그래서 금방 팔았죠.

- 제 가방이 컸으면 장난감을 더 가져와 팔았을 텐데 작아서 돈을 조금밖에 못 벌었어요. 다음엔 더 많이 가져오려고요.


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경제 개념을 가르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 잃어버린 물건은 끝까지 찾아보게 합니다.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고 책임지게 하세요. 경제관념의 가장 기본은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장을 볼 때에도 예산을 세워서 물건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시장에 가기 전, 아이와 함께 우리가 사야 할 물건은 무엇인지 의논하보고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얼마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 스스로 돈을 벌어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세요. 예를 들어 분리수거를 도와주면 용돈 100원, 이불 정리를 스스로 잘하면 100원...

-  가정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 아이에게도 알리세요. 대출이 얼마가 있고 언제까지 얼마를 갚아야 하고... 엄마 아빠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면 얼마를 버는데 우리 집 생활비로 얼마를 쓰고 있고 네 학원비로 얼마를 쓰고 있다고...

-  용돈을 조금씩 주어 관리를 직접 해보며 자신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가게 놀이가 끝나고 번 돈을 자랑하는 아이들입니다. 보통 저학년은 가짜 돈을 만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만, 이 경우 아이들이 아무거나 구매해서 빠른 시간에 탕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 돈이 아니니까요. 자기 돈(2000원 이내)과 물건을 가지고 와서 사고팔게 하면 아이는 더 신중한 경제 활동을 하려 애씁니다. 자기 물건은 더 비싸게 팔려고 하고 구매할 땐 싸게 사려고 노력하지요. 실물 경제를 학습하는 셈입니다. 

어떤 아이는 돈을 많이 벌고 어떤 아이는 물건을 다 팔았지만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가 지닌 경제 개념과 돈의 가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돈을 많이 번 아이는 장난감을 가져온 아이들입니다. 친구들이 장난감에 관심 있을 거라는 걸 예측한 결과지요. 책이나 옷을 가져온 아이는 물건을 거의 팔지 못했습니다.

돈을 많이 번 아이, 또 그 반대인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았습니다. 장난감을 가져온 아이는 엄마의 도움을 거부하고 자기가 직접 (아끼는 장난감을) 골라왔다고 합니다. 또 놀이 전날부터 아이들에게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내일 장난감 가져올 테니 사고 싶은 사람은 미리 예약하라고 홍보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이나 옷을 가져온 아이는 부모님이 챙겨주셨다고 합니다. 아직 1학년이니 아이 스스로 준비해 보라고 하기가 걱정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친구들이 무엇을 사고 싶어 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직접 물건을 골라 팔아보는 게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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