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헤라자데 Aug 11. 2020

햇병아리 예비 간호조무사의 이야기 10

욕을 먹어도 계속 전진할 수만 있다면 !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그다지 썩 좋은 눈썰미와 재치는 없었지만 -일머리가 특출나지 않았다는 말도 됨- 내 할일을 수첩에 미리 적기도 하고 또 메모도 하면서 일을 숙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병원 선생님들도 거의 대부분이 나보다 연장자시고 여자분들이셨기 때문에 왠만하면 수다쟁이는 되지 않으려고 하였다. 원래도 내성적이라 말이 없는 편이긴 해서 사회 생활 할 때 좀 불편한 점으로 작용했었는데 이번 실습때는 되려 말이 좀 없는 편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란 정말 쏜살같이 도는데다, 과장이나 왜곡이 되기도 하고 말실수는 다시 되돌려 놓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바이탈을 재는 것 부터 시작하여 선생님들 드레싱 보조, 또 드레싱 세트 설거지하고 멸균 소독 돌리고 어르신들 식사돕기, 약 정리하는 것 보조하기 , 물품타는 것 보조하기 등등 이리 뛰고 저리 뛰고...데이와 이브닝 인수인계시간이 가장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시간 정도는 별일이 없으면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졸리기 까지... ㅎㅎㅎ 혼자 병동 실습을 하다보니 외롭기도 했지만 또 알아서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선생님들 눈에는 아직 한참 못미쳤겠지만 나중에는 성실하다, 말없이 우직하게 열심히 한다는 평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바이탈을 재고 기록을 컴퓨터에 남기는데 뒤쪽으로 다른 병동에 새로오신 간호사 선생님이 인사차 우리 병동에 오셨다. 아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선생님이신데 그래서 나도 호기심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하며 주의를 집중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왠지 미인의 분위기가 스멀스멀 ~~~   했다. 알고 보니 나이도 동갑인데 미혼이라고 했다 . 우리 병동으로 왔으면 싶었지만 어차피 나는 실습생이 아닌가. 몇달 일하고 나갈 실습생인지라 그러려니 했다.

그 선생님이 가시자 마침 우리 병동에 와 계셨던 간호과장님과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대화를 나누셨다.

수간호사 선생님이 

" 참 예쁘네요 그렇죠?"
하시자 간호과장님께서 

" 응 그러네요, 그런데 예쁘기만 하면 안돼. 여기 병원일은 욕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마인드가 있어야 해. !그게 가장 중요한 거지!"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왠지 간호과장님이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욕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마인드. 이런 것을 존버정신이라고 하는 건가? 나처럼 어벙벙한 사람도 끈기와 인내만 가지면 이쪽 병원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일까? 나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나는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감동(?)을 한다. 

 

어르신들도 각각의 개성을 갖고 계셨다. 처음에는 이름도 못 외웠지만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기억을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들보다는 할머니들이 훨씬 많으셨는데 최고령자 만 109세할머니부터 시작하여 50대분들도 계셨다. 최고령자 할머니께서는 총기가 어찌나 총총 하신지 다 알아들으시고 의사소통도 원활히 하셔서 속으로 깜짝 놀랬다.

그런가 하면 치매기로 분명 왔다갔다 하시는 할머니도 계셨는데 자신이 속한 병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훤히 꿰뚫고 계시기도 하셨다. 예를 들면 그 병실에서 뭔가가 물건이 없어지만 어떤 어르신이 그 물건을 훔쳐갔는지 다 알고 계시더라는 말씀... 분명 치매신데도...

훌륭한 간호사가 되라는 격려를 해주신 어르신이 계시는가 하면 바이탈 잴 때 엄청 화내고 짜증내시는 어르신도 계셨다. 정말 개성들이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가족에서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진심은 통한다고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말하고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드리니까 매우 좋아하셨다. ^^ 아직도 그 어르신들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실습 초반에 식사 보조를 드리는 어르신이 계셨다. 굉장히 성격이 예민하시고 까탈스럽기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식사보조 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하여간 식사 보조하는 동안에는 " 할머니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하면서 온갖 애를 썼다. 어떡해서든 한숟갈이라도 더 드시게 하려고 나름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식사 다 하면 처방된 약을 드시게 했다. 정말 허리 굽혀 할머니 수발을 드는데 허리가 다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난히 까탈을 부리시는 날이 있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시곤 결국은 요양보호사 여사님이 자신이 먹이겠다며 학생은 어서 퇴근하라고 했다. 

다음날 병원에 와 보니 바이탈 차트 목록에 그 할머니 이름에 빨간 줄이 쳐져 있었다. 이게 뭐지? 라고 혹시!!!했는데...내 직감이 맞았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그 할머니께서 간밤에 돌아가셨다고 전해 주셨다.

아...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식사보조 담당하는 할머니신데... 병실에 가니 빈 침상이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안됐기도 하고..후회도 되고.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드릴 것을...항상 후회는 늦다. 

요양병원에서는 그런 일도 많다. 연세가 고령이시니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지셔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종종 계신다. 아... 나는 잠시나마 돌아가신 그할머니의 명복을 속으로 빌었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병원은 참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햇병아리 예비 간호조무사의 이야기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