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는 이유
나는 인류의 미래, 지구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사회, 기술,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들이 어떤 발전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 호기심이 매우 많다. 그래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과 정보를 습득하며 나의 개방성을 확장하고자 노력한다. 때론 각계각층 사람들의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기도 하고, 현재 사회체제가 과연 영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내 삶 하나 간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공부한 지식과 자료들을 가지고 미래변화 양상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많다. 이 경우 답변의 대부분은 낙관적이다. 하지만 그 낙관적인 것이 정보에 바탕한 낙관이 아닌, 애초에 관심과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게다가 '이걸 우리가 왜 고민하냐?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일이나 잘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우리 일이란, 보통 일하면서 돈 벌고 남는 시간은 놀면서 즐기는 평범한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 할 일 잘하면서 사회는 알아서 굴러가겠지 하고 두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힘든 만큼 남은 시간에 내 삶을 즐기는 것 말이다. 미래 사회에 대해서 걱정해봐야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스트레스나 받을 텐데 굳이 할 이유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런 관점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한국 기준)? 내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Legacy for the next generation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나는 27세이지만, 벌써부터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미래가 유토피아가 되느냐, 디스토피아가 되느냐는, 결국 어느 누군가에 의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미래는 없다.
예전에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누군가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국가가 난세에 있을 때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세에 힘입어 이익을 취하려는 5%의 사람들, 진실을 지키고 국가를 지키려는 5%의 사람들,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90%의 우매한 대중들.'
나의 삶이 힘들어 시작한 책 읽기에서, 다양한 분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개방성을 확장하는 쪽으로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였다. 공부하고 알아가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나 또한 우매한 대중 중 한 명이었으며(과거엔 그렇게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우매한 대중을 벗어났다고는 스스로 말할 수 없다.
모든 현상은 현실을 대변한다.
서점에 가도 한 베스트셀러 분야의 10권 중 7권이 '위로, 힐링' 관련 책이다. 잘되는 TV 프로그램도 대부분이 힐링과 여행이다. 현실이 그만큼 힘들고, 사람들이 지쳐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부분 중에 하나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이런 사람들에게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시스템들은 과거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그만큼 미래 세대를 위한 예측모델을 만들고, 깊게 생각하여 시스템을 정립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투표와 정치참여 결과가 현재의 모델을 만들었고, 그들로부터 자란 아이들 또한 진실과 옥석을 가리는 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점은 꼭 언급해야 겠다! '현 시대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최선을 다했더라도,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를 우리는, 사람은 모두 예견하고 보완할 수 없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누구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 우리가 가만히 있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만큼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자 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것 아니냐?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고 물을 수도 있다. 말로 표현하다 보니 조금 강하게 서술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든 것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다. 또한 무언가가 정립되고 만들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0대 초반 시절 나의 의문을 풀기 위해 수백 명의 어른들을 만나 상담했을 때에도, 최근 몇 년간 나의 생각에 대해 어른들에게 질문했을 때에도 그들로부터 내가 느낀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를 갖고 있기보다는 서술된 정보와 미디어에 의존하고, 더 나아가 오히려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관심 있는 척, 아는 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모든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에 상시 귀 기울이고 있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관심 있는 어떤 분야가 있다면, 최소한 그 분야에 대해서는 일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주관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관과 정체성은 어떤 사실에 의해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떠오르는 나의 의견이 아니다. 즉, 파블로스의 개처럼 종을 치면 침을 흘리게 되는 그런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주관과 가치관은 정말 많은 공부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그 공부가 당장 내게 돈으로써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우린 미래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주어지는 정보들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과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고 공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당장 내게 돈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올바른 가치관은 사회를 올바른 방향,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과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까지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돈과 물질이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더라도, 각자 개인이 영속적인 미래, 후세를 위한 준비를 조금은 해나가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큰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재 사회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려고 노력하고,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으며, 진실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력, 거기에 더해 자원을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노력이 미래 후손들이 더욱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라. 그리고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의 국민들을 보라.
나이가 들어 우매한 대중의 한 명으로서, 꼰대로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하는 노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후대에게 떳떳이 전해줄 수 있는 단 한 가지 유산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그것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드는 동안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자원을 활용해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까 고민한다. 내가 죽는 날 기억나는 것은 내가 모은 돈의 액수가 아닌, 무엇을 해왔는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일 것이다. 후세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압박, 부모님의 압박 등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후손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최소한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갖고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세상이 좋게 변하든, 나쁘게 변하든 그것은 누군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일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왜 남이 해주기만을 기다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