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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quer Oct 14. 2019

고착화되는 삶의 프레임과 반복되는 루프

매트릭스를 탈출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

나는 항상 변화시키고 싶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내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몇 년 전 내가 나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돈을 버는 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시간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고통스러운 것들이었다. 내가 목표를 향해 위해 견디는 고통이 아닌, 의미 없는 고통, 시간, 낭비들이 난무했다. 이러한 삶을 평생 지속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뇌가 유연할 때 변화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변화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내다 보면, 내가 20살 때 힘들어서 상담하고자 만났던 수백 명의 어른들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만 같았다. 뭐랄까, 나 자체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었다.


사람이 살아온 삶은 그 사람의 선택의 합이라는 말도 있듯,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해야 많은 선택들이 더 나아질 것이고 내 삶도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등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나는 최소한 처음보다는 나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매년 색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그리고 '남들과는 달라'라고 생각하였지만-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특히 그 색다른 무언가를 매년 해오면서도, '그것을 선택하고 행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제'는 변함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과거의 삶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정리해보기로 했다. 왜 그 당시에 그 행동을 했는지,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든 것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거짓된 멋있어 보이는 동기가 아닌 진짜 내 내면에서 흘러나왔던 찌질하고 처참했던 동기까지 모두 기록했다. 그렇게 정말 솔직하게 나를 기록하자,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짓된 동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진실된 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찌질했던 내 내면의 동기들을 바탕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내 삶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그것은 '환경과 조건이 변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행동과 마음의 기제들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그리고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동이 발생하게  근본 기제는 모두 같다(근본적인 마음의 기제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내 표면적 동기는 계속해서 변화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경과 내가 그때그때 마주하던 정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 그런 나의 생각과 행동을 조작하는 나의 근본 마음 기제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왜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힘든 것일까? 그래서 심리학, 행동학, 유전학 등 인간과 과학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가설들을 만들게 되었다.



유전자, 환경, 삶, 행동 등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왜 이렇게 변화는 힘든 것일까?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무조건 따라 하길 강요받는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이것에 의문을 품어보았다. 기존에 그것을 시도해봤지만 지속되지 못했고, 그런 나를 자학하기만 했다. 그래서 과감히 그것을 그만두고 내가 만든 가설에 따라, 내가 궁금해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부분들을 하나씩 해결해보기로 했다. 모든 기준을 이미 성공한 사람의 것들이 아닌, 나를 출발점으로 두고 시작해보았다.




처음 내가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업'이었다. 그래서 퇴사 후 그냥 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보았다. 사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루하루 고통스럽지만 기쁘고 신나고 기대되는 날이 올 것이라 수년간 고대해온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실제로 해보니 기대와는 달랐다. 고통은 내게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오히려 난 고통을 즐겼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사업은 나라는 사람에게 돈이 들어와도 전혀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난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게 아니구나. 그러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70대가 되면, 자연과학, 우주, 진리, 철학 등 추상적인 것들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다시 대학을 가고 싶은 계획이 있었다. 그전에도 꾸준히 공부해오던 것들이었지만 그 공부를 70대가 되어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하면 안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무언가 소속감이 없다는 것에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히 그런 공부를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불안감과 조급함을 뒤로하고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교양 수준에서 시작해서 조금 어려운 것까지 내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공부를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돈 그 자체보다도 학문적 발견과 탐구, 새로운 지식에 더욱 행복하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알고 나니 어떤 분야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또 마음이 가는 대로 공부를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관심이 가는 분야를 어느 정도 필터링해서 고를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 과감하게 돈을 투자하여 심리상담도 받아보았다. 감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컨설팅도 받아보고, 사람도 만나보고, 새로운 작은 시도들을 지속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속하면서 난 작은 깨달음들을 모을 수 있었고, 그것들은 정말 말 그대로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통상적인 사회적 신호들을 무시하고 내 꿈을 찾아 달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완전히.(자세한 것은 다음 글에 서술함) 


여기까지 서술된 과정은 글로 정리하니 문제없이 착착 해결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 모든 것을 수행하는 과정은 수개월에 달하는 시간이었다(그전에 과거 수년간 했던 시행착오와 경험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수입이 없어 이대로 평생 지속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매일매일 들었고, 빨리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며칠은 우울함에 잠만 자기도 했고, 갑자기 어느 날은 의욕에 불타 이것저것 시도해보기도 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예전부터 스스로에게 말하던 '80살이 되어 지금을 돌아본다면 지금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되뇌며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했다.


결국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많이 쓰고, 중간에 허비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깨달은 것이 많다. 내가 기대했던 것들, 궁금했던 것들, 가보지 않았던 길들은 직접 가보니 별 것 아닌 경우도 많았다. 당장은 모아놓은 돈을 소모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들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그 무언가'를 해보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그걸 해야 하는데'라는 미련에 하루를 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대신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돈을 더 많이 모았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 내게 미래에 더 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내 삶이 반복적으로 비슷하게 흘러가고,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은 나를 구성하는 프레임의 끝까지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프레임의 끝, 그리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분명 우리의 삶에 작던 크던 리스크로 다가온다. 다시 말해, 27살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은 내가 과감하게 잃을 각오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내 기준에서, 그리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점도 있었다). 변화를 원했지만, 변화를 위해 모은 돈을 쓰기는 아까웠다. 현실에서 배우길 원했지만, 직장 없이 직접 하는 것은 두려웠다. 하나를 잃기 싫어 두 개를 어중간하게 다 잡으려고 하니, 두 부분에서 제대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를 잃을 각오를 하고 나머지 하나에 걸어보니, 하나라도 남는 게 생겼다. 순간 미쳐서 내가 최대한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뛰어보니, 확실하게 잃는 것은 있었지만, 얻는 것도 생겼다. 



내가 가진 것들이 크게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것들의 결함과 부족함만 찾고 있었다. 이 직업만 탈피하면, 사업만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좋은 사람만 만난다면, 이라는 가정과 기대를 세우고 계속 그것들을 추구했다. 맘에 안 들면 또 더 나은 것을 추구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달렸다. 틀려도 좋다. 그랬더니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수차례 이상 겪고 나니, 내 삶을 정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정말 28년 살면서 가장 큰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 맘에 안 들던 것들, 경험, 사회 등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하철에 앉아있으면서 들리는 소리가 정말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지금 이런 깨달음 또한 어쩌면 새로운 우물 안 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프레임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또 그것을 깰 것이다. 현실적인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지는 않겠지만, 당장 맞다고 생각하는 최대한의 경험을 또 할 것이다. 그게 어떤 사람 입장에서는 아예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지 않아 내게 있어 미련이 남는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극단적인 개방성을 가지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최대한 빠르게 실행에 옮겨 새로운 깨달음을 계속해서 얻으며 부딪히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최대한 빠르게 실행에 옮겨 깨달음을 쌓아가는 것이, 기존의 프레임을 깨고 반복되는 루프에서 벗어 나와 매트릭스를 탈출하는 방법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깨달음마저 깨질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것. 지속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의문을 풀어나가는 것. 두려움, 사회적 신호와 조건에 압도되지 않고 내 길을 만들어 가는 것.


경험과 깨달음이 쌓이면서, 단순히 내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나는 이제 세상에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로는 많은 책과 경험들이 있었다. 


지금 다시 한번 내게 물어본다. 왜 프레임을 깨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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