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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Jun 21. 2024

'우리'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

쓸고 닦고 움직이기. 거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쌓기.

'더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결혼을 준비하지만, 그 과정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질문들이 따라온다. 결혼식을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어디에 살 건가 하는 질문까지. 수많은 질문에는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까' 하는 신나는 질문도 있는 반면 '어디에서 살 건가' 하는 꽤나 복잡한 질문도 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어떤 질문에도 금방 답을 내렸다. 상대가 바라는 게 있으면 이를 들어주는 쪽으로 정했고, 결혼 전반에 대해 비슷한 그림을 그리려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많은 걸 더하지 않더라도 할 땐 최선을 다하자!"는 모토 아래 매 과정을 즐겼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지를 정할 때도 그랬다. 새 신혼집은 결혼하고 구하는 것으로 결정하니 답이 금방 나왔다. 관계망과 인프라 등 고려해야 할 내용이 많은 문제였는데 선 우리의 시작을 현재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으로 정했다. 이제까지 만나고 연결된 동네 이웃들과 예전만큼 편하게 만날 없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남자친구와 함께 하는 거라 용기를 다.


답을 내렸으니 남자친구도 나도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집과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차근차근 소개해 주었고 나는 여기서 우리가 함께 할 모습을 상상했다.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호떡집, 집 근처 자주 가는 시장과 마트, 가끔 외식하는 식당, 저녁을 먹고 산책하는 동네 공원...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지던 동네가 남자친구의 소개로 점점 친근하게 다가왔다. 시장에서 같이 장을 보고 함께 요리면 좋겠다, 주말에는 아점으로 시장 호떡을 먹으러 오면 좋겠다, 같이 저녁 먹고 여기를 걸으면 좋겠다. 상상할수록 얼른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의 집'을 얼른 '우리집'으로 만들어야 했다. 생각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시간을 보낼 안방부터 꾸미기로 했다. 새로 시작하는 만큼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싶다는 남자친구의 의견을 따라 셀프 도배, 셀프 장판에 도전하기로 했다. 조금 겁은 났지만 이 또한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것 같아 과감하게 결정했다. 결전의 날은 주말이었지만 마음이 급해 금방 풀바른 벽지를 사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장판도 샀다.


그리고 주말,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와 든든히 배를 채운 상태로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온몸에서 땀이 났던 오후가 지나고 장판을 깔 때쯤 되자 저녁이 되었다. 6시간 정도 걸려 도배와 장판을 모두 끝내고 보니,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 영역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급해' 일찍 주문한 벽지는 높이를 잘못 주문했고, 벽지에 풀이 발려 있었기 때문에 그새 불어 새 칼날로도 잘 잘리지 않았다. 꼼꼼하게 알아보지 않은 나를 자책하고 셀프 인테리어가 생각보다 어려워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지만 그때마다 남자친구가 잡고 끌어주었다.


본인이 더 힘들 텐데 나를 먼저 다독여주고, 현실적인 해결책도 제시하며 뭐든 하려는 모습에 나도 더 움직일 수 있었다. 다 끝내고 벽지의 점차 마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나의 실수로 우리의 시작을 망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더 속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었다. 결과물 자체도 다행이었고 끝까지 해낼 수 있다행이었다. 모든 과정이 남자친구 덕분이라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희로애락을 전부 느낀 공간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없는 안방이지만 '우리집'이라 느껴졌다. 앞으로도 함께 정리하며 '우리집'이 점차 넓어질 거라 생각하니 실수에 대한 걱정보단 기대감이 더 커진다. 물론 실수를 안 하는 게 좋겠지만 하더라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쌓아갈 날들에 큰 문제는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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