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피보테
아이유, 슈가의 콜라보곡 ‘에잇’, 방탄소년단 ‘We are Bulletproof : the Eternal’의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스튜디오 피보테’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0년 5월 6일 디지털 싱글로 발매된 ‘에잇’은 스물셋, 팔레트에 이은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 곡입니다. 스물 여덟의 아이유의 마음과 생각을 엿볼 수 있죠. 동갑인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공동 프로듀싱과 피처링을 맡았습니다. 아이유와 슈가는 각자 파트의 가사를 쓰기도 했는데요.
기존 여리여리한 창법이 돋보이는 아이유 곡들과 달리 ‘에잇’에서는 아이유의 단단하고 직설적인 창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유는 이 곡을 설명하며 “나의 스물 여덟은 반복되는 무력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우리’가 슬프지 않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오렌지 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변화된 창법에서 무력감을 주는 현실의 모든 악몽을 이겨 내고 우리가 꿈꾸는 자유로운 오렌지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사의 의도가 읽혀졌습니다.
뮤직비디오는 현실의 아이유와 애니메이션 속 화자, 현실 속 갇혀있는 도마뱀과 오렌지섬 속에서 자유롭게 활강하는 도마뱀, 비행기를 탄 아이유와 도마뱀을 타고 조우하는 장면, 마지막 비행기 안의 소녀가 하늘을 나는 소녀를 바라보는 슬픔 섞인 미소까지. 감정과 상황이 비교 대조되는 장면을 나열해 뮤직비디오의 주제의식을 강조합니다.
아이유의 꿈(상상, 혹은 기억) 속 ‘오렌지섬’의 모습이 나올 때 애니메이션으로 장면이 전환 되는데요. 오렌지색은 심리적으로 따뜻하고 명랑하게 만들며 활동성과 호기심을 상징하는 색깔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애니메이션 속 화자가 쨍한 오렌지 컬러를 배경으로 달려가는 부분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튜디오 피보테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러프애니메이션 / 애니메틱스에서 주인공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장면의 탄생 과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릿결, 옷매무새의 움직임이 정말 섬세하게 표현됐네요.
애니메이션 속 화자와 도마뱀의 캐릭터 디자인 / 아트웍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2020년 2월 21일 발매된 ‘MAP OF THE SOUL:7’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부정적인 시선’에 맞서 ‘겨울 같은’ 시간을 거쳐 정상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를 담은 곡입니다. 데뷔곡 ‘We are Bulletproof Pt.2’, 파트 1이지만 2015년에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 됐던 ‘We are Bulletproof Pt.1’에 이은 ‘위불프’ 시리즈 세 번째 곡입니다. 마치 3부작 영화의 완결편인 듯 구슬프고 장엄해 마무리 느낌이 납니다. 콘서트 마지막을 장식해 아미들 엉엉 울릴 감성이랄까요. 아무튼 곡만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왔습니다. 이 노래 무대나 뮤직비디오 나오면 백퍼 울겠구나.
뮤직비디오는 의외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 주는 남다른 뭉클함이 있던 영상이었죠. 처음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멤버들의 얼굴이 다 비슷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죠. 아마 일곱이 하나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대신 이들의 배경이 되는 뮤직비디오, 활동 시기별 헤어와 의상들을 알고 있다면, 방탄소년단의 7년을 아는 팬이라면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있게 그려놓았죠. 뮤직비디오의 기획 의도 특성상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아이디어가 크게 반영돼 보이진 않았습니다.
3등신으로 표현된 방탄소년단 캐릭터는 귀여웠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짧은 시퀀스들을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손가락으로 톡 친 보라색 반딧불이가 급상승해 두 발로 달리던 방탄소년단이 고래를 타고 훨훨 날아가는 장면으로 넘어가던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종종 뮤지컬 영화에서 음악이 흐르던 중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환시킬 때 쓰는 장치와 흡사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자연스러운 전개와 극적인 감성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죠. 이렇듯 뮤직비디오에서는 드라마틱한 줌인, 줌아웃이 많이 쓰였는데 마치 그 극적인 움직임이 방탄소년단의 굴곡진 7년의 여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튜디오 피보테는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 스튜디오로 이진우, 이정수 씨가 열었습니다. 개인 작업물 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의뢰 받은 작업물이라도 스토리 제작, 기획에도 적극 참여하는 말그대로 ‘창작’ 스튜디오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요. 그들의 주요 작업물들을 항목 별로 알아보겠습니다.
음악 페스티벌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2018 뮤직비디오에 선정된 피제이의 ‘나비야’ MV입니다. 이전까지 국내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선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비야’는 자이언티의 반려묘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된 곡입니다. 자이언티가 직접 그리던 반려묘 캐릭터, 스토리라인에서 출발했다고 해요. 애니메이션화 된 사립탐정 자이언티가 고양이를 찾아 가는 여정을 환상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했습니다. 여성을 고양이로 비유한 뮤직비디오와 가사 스토리는 그닥 제 취향이 아니었으나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그러한 불편함이 완화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래 뮤직비디오와 음악이 더 제 취향에 가깝네요.
개봉 당시 영화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 취향이 아니라 외면했던(…) <히트맨>에 삽입된 애니메이션도 스튜디오피보테의 작품이었습니다. <히트맨>은 국정원 암살 요원이 웹툰작가가 된다는 설정에 힌트를 얻어 실사, 웹툰,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극 활용한 영화였는데요. 아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 밖에 보지 못했지만 스튜디오 피보테 특유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강렬한 색감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딥플로우의 앨범 커버 아트웍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한 편의 미국 영화 포스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 피보테는 이전에도 방탄소년단과 인연이 있었는데요. ‘아기 상어’ 노래와 콜라보한 BT21 스페셜 필름을 작업했습니다. 무대에서 아기 상어 노래에 맞춰 춤추는 귀여운 BT21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 오픈하는 라인스토어에서 상영되는 영상물을 작업한 적도 있죠. 미국물 먹은 힙한 BT21 정말 귀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