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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준 May 15. 2022

인도양에서 날아온 열정

선택받은 자들의 비통함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뜻밖의 동행


지난 3월, 금요일의 마지막 중간고사를 끝내고 학교 매점에서 야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인도양의 한 국가에서 온 친구와 함께 매점에 갔습니다. 저는 주로 오세아니아와 남아메리카에서 온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는데, 그날에는 어쩌다 그와 매점에 갔습니다.


그의 예명을 타피타라고 하겠습니다. 타피타는 집안의 유일한 대학생입니다. 아버지는 목사고, 모국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지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수출 품목에 의존하던 경제가 코로나로 인해서 휘청거렸고, 수많은 개도국과 마찬가지로 그의 모국 또한 위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인권보다 생존이 우선시되는 환경에서, 그는 어떤 교육을 받고 세계의 중심에서 장학생이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그런 학생이 미국에는 차고 넘치지만, 타피타는 남들과 다른 분위기를 첫날부터 자아냈기에 유독 그에 대한 궁금증이 컸습니다.


“Warmth,” from Hellertown

타피타와의 첫 만남


작년 8월, 저는 그와 같은 오리엔테이션 팀에서 활동하며 꽤 친해졌지만, 전공도 일정도 맞지 않아 첫 학기 중에는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유독 밝고 남들을 잘 챙겨서 굉장히 유복한 집안에서 티 없이 자란 학생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틀렸더군요.


저희 학교에는 몇 년에 한 번씩 인도양의 국가에 교사를 보내 장학생 한 명을 선별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교사는 주로 학교 우등생들이 뽑히고, 그 국가에서는 치열한 선별 과정을 통해 오직 한 명만 합격을 합니다. 설마 그 프로그램의 수혜자를 첫날에 만나 친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국외 장학생이라고 한다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자국의 엘리트 부모님 아래에서 철저히 교육받았지만, 미국 대학의 너무 높은 학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학금을 받고 온 학생들입니다. 고향에서는 무리 없이 상류층 생활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타피타는 전형적인 언더도그 장학생에 속했습니다. 개도국의 소수 민족 집안에서 자란 그는, 현지에서 공대를 다니다 어찌어찌 그런 장학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발되었습니다. 한순간에 이름 모를 대학에서 졸업 직후 평균 연봉이 8천만 원을 웃도는 미국 사립대학으로 전학 온 그에겐, 언더도그 장학생 모두가 공유하는 비통함이 보였습니다.


“Agony,” from River Wear

성공의 비통함


그와 매점에서 대화하며, 그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누리는 풍요로운 환경: 우수한 시설에서 운동하고, 아이비리그 박사 출신의 교수님께 1:1로 보충 수업을 듣고, 제3국 장관 출신의 교수님께 지도를 받고,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학교 매점에서 꽤 괜찮은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것을 누리지 못하는 고향의 친구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글쟁이인 것을 안 그는 자신의 글을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메모장은 우울한 글들로 점철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수난을 뚫고 성공한 사람이라면 긍정적이고 "NOTHING IS IMPOSSIBLE" 같은 문구를 블로그에 적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극복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의 메모에는 흉터가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반쯤 처져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여유 넘치고 사교성 좋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자기는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모국의 인재(人災)와 부정부패 등을 고치고 싶다고. 그런 그에게서 저는 '구조된 자의 죄책감'을 발견했습니다.


“Crack,” from a Sidewalk

구조된 자의 죄책감


프리모 레비라는 유대계 이탈리아 화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며, 관련 책을 출판하고 나치를 비판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입니다. 그는 파시즘의 지옥에서 탈출하고 성공한 화학자, 에세이스트로 살아왔습니다. 그랬던 그는 어느 날 자살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물론 내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들 무리에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남들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適者)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불태워 살아남는다면, 남는 것은 자신감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비참한 경쟁의 승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오는 죄책감입니다. 내가 그들보다 점수를 조금 더 잘 받았기에, 내가 누구보다 인맥이 더 넓었기에, 내가 운이 더 좋았기에 그 좁은 문을 뚫고 성공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걸 알아버린 그에게 죄책감은 필연이었겠죠. 그리고 그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마 저에게서 그 자신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Glow,” from Hudson Yards Station

박애(博愛)


작년 겨울, 대학교에서 심리 치료를 받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리 찾아봐도 자퇴하고 장학금을 받고 온 국제 학생을 발견하지 못했고, 15년 전에 인천 출신 자퇴생이 MHC에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했다는 정보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소속된 곳의 구성원들과 같은 배경이 없다는 사실은 저를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자퇴했다는 사실을 꼭꼭 숨기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다 속이 터질 것 같아 심리 치료를 받게 되었죠.


치료를 받던 어느 날, 상담사는 제가 굉장히 박애(博愛)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타피타가 한 말을 제가 비슷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곳에 운이 좋아서 올 수 있었고, 세상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자퇴하거나 일하는 언더도그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나와 같은 출신의 경쟁자들과 싸워서 내가 선택을 받았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얼굴조차 모르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저에게서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이런 대화를 저 말고도 다른 사람과 해보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더군요. 심지어 같은 프로그램에서 선발된 선배에게도. 그렇게 저와 타피타는 새벽 2시까지 대화했습니다. 평소라면 파티에 가서 취해있을 시간이었지만, 몇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을 그렇게 우연히 보내게 되었죠. 이후 밤이 늦어 그에게 응원한다고 말하고 매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짧은 길에서 그와 만나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Tradition: Two Hundred Years,” from a College

회색지대의 증인들


다음 날 문득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입학사정관들은 나와 타피타를 왜 선택했을까? 아마 다른 학생들이 가지지 못한 배경에서 열심히 살아온 의지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타피타와 저는 200여 년 동안 동부의 백인만을 품은 학교에 다양성을 불어넣으라고 오게 된 것이겠죠. 그러나 입학사정관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저희는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정말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이곳에 다다를 기운이 없거나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은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저희의 경험을 다른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가 사각지대에 있던 것일까요? 저희는 진정한 사각지대의 증인이 아닙니다. 바닥을 치고, 가라앉아버리고, 벙어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완전한 증인들이고, 저와 타피타는 수완과 행운 덕분에 바닥까지 가지 않은 회색지대의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 사실을 알기에, 타피타와 저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낄 것입니다. 포기한 자들, 막장에 다다른 자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곳에 빠지지 않고자 더 열심히 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발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고, 혹여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신촌에서

2022/05/15


본 글 사진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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