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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 Mar 10. 2019

1. 최초의 집, 부엌

어릴 적 집으로 통하는 싱크대 밑 빈 공간


방과 싱크대가 한 공간에 있는 지금 내 방에선 앉거나 누우면 싱크대 아래 공간이 훤히 보인다. 여느 집처럼 싱크대 하부장 아래를 막아두는 대신 네 귀퉁이에 다리를 달았다. 틈 높이가 족히 한 뼘은 돼 보인다. 다들 그런 공포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싱크대 밑에 있는 틈이 싫다. 그 어두운 데서 꼭 뭐라도 나올 것만 같고 찝찝하다. 다행히 침대도, 책상도 싱크대를 등지게끔 배치한 터라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빨래 중인 세탁기가 몇 분이나 남았나 싶어 뒤돌아보면 옆에 있는 싱크대 밑에도 꼭 시선이 간다. 그럴 때면 기억은 먼 어린 시절로 자주 되돌아간다.


우리 집은 주택이었는데 부엌에 바퀴벌레가 많았다. 간밤에 부엌에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려고 불을 켜면 몇 마리나 되는지 모를 바퀴벌레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슥 하는 소리와 숨어버린 꽁무니가 잔상처럼 남는 기분이었다. 제때 숨지 못한 벌레는 바닥 구석이나 벽 위에 한 마리씩 남아 있었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지만, 주택은 구조상 벌레가 잘 나타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르니 가족 모두가 속이 탈 노릇이었다.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는 나도 바퀴벌레만큼은 정말 끔찍하게 싫어서, 항상 불 꺼진 부엌 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입구를 서성였다. 사실 부엌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눈 감고도 잘 알지만 행여나 밟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반드시 들어가기 전에 불을 켜고 들어갔다. 그리고 바퀴벌레들이 다 숨을 때까지 돌아서서 하나, 둘, 셋… 열까지 숫자를 셌다. 마치 동굴 입구를 기웃거리는 사람처럼 부엌문 앞에서 긴장을 타며 거행하는 습관은 숨 쉬듯 몸에 뱄다. 


그곳엔 분명 내가 추정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벌레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증은 있어도 절대 내 눈으로 직접 볼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싱크대 배관을 타고 들어왔다가 싱크대 주변 틈으로 숨었을 바퀴벌레. 그래서인지 요즘도 싱크대 장 아래에 난 틈을 보면 그때 부엌 불을 켜기 전까지의 찝찝함과 바퀴벌레가 눈에 안 보일 때까지 숫자를 세며 기다리던 초조한 마음이 생각난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바퀴벌레만큼이나 진저리나던 그때의 우리 집을 미워했던 내 마음까지도 함께. 



*2020년 3월에 나온 1인 가구 에세이집 《삶이 고이는 방, 호수》에 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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