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공용 부엌에서 설거지를 한 직후의 일이었다
설거지하고 잠깐 엎어놓은 사이에 사라졌다. 한 1시간쯤 됐나? 잠깐치고는 좀 길긴 했다. 그래도 물기 빠질 때까지 안 가져간다고 해서 그게 버린 건 아니지 않나. 심지어 숟가락, 젓가락까지 없어졌다. 수저까지 없어진 포인트에서 진짜 훔쳐간 인간의 찌질함에 넌더리가 났다. 일단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못 보던 공용 그릇인 줄 알고 썼다가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놓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그릇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이소에서 산 그릇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걸 훔쳐 가냐. 인간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비싸지도 않은 그릇을 도난당했다고 동공이 흔들리며 풀이 죽는 내가 또 너무 찌질했다. 인간들도 이런 나도 다 짜증이 났다. 이제 무서워서 어디 설거지하고 물기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나 있겠나. 그날 이후로 밥 먹고 설거지한 그릇은 바로 방에 들고 들어가 키친타월 위에 엎어놨다. (그리고 한 번 자리 잡힌 이 습관은 삼 년 뒤 세 번째 원룸텔에서도 계속됐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원룸텔 생활의 베테랑이 되어가는 중에 있었다.)
잃어버린 그릇은 새로 샀지만 쿨하지 못한 마음 한구석은 같은 층에 세 든 모든 호수의 사람을 의심했다. ‘대체 누가 가져갔지? 가져가서는 얼마나 잘 써먹으려고!’ 하필 도난 현장이 매일 쓰는 부엌이어서 잊을 만하면 자꾸 생각이 났다. 하지만 무슨 수로 알아내겠나. 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어느 방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몰랐다. 나 같은 경우에는 되레 불필요한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자 외면하는 편에 가까웠다.
같은 주방, 같은 욕실을 쓰는 사이지만 거기서 낯선 사람을 마주치는 것에 무덤덤해지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홈웨어 입고 편하게 다니는 곳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이 툭툭 튀어나오는 당혹감. 애초에 소속이 같아서 같이 살게 된 게 아니라, 생활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외엔 어느 하나 접점이 없는 사이였다. 그들 밖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벽을 치고 말을 안 섞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그 당시의 나는 생활환경이 겹치는 타인과 친밀해지는 일은 간섭을 벌어들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철저히 방어적인 사람이었다.
단 하나 물증 없이 심증만 가득했던 대상이 있는데 누구냐면 매일 같이 부엌을 점령해가며 진수성찬을 차려 먹던 중국인 유학생 무리였다. 매 끼니 어찌나 성대하게 차려 먹는지 라면 물 하나 올리려면 그들이 없는 타이밍을 잡아야 했다. 눈치 없이 혼자 조용하게 부엌 쓰는 나 같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니 내심 못마땅하던 차였다. 심증을 거두지 못한 채 그릇 도난 사건은 그냥 잊어버렸지만, 그때 본 중국인 유학생 무리에 대한 첫인상은‘민폐’라는 단어로 남게 되었다.
앞으로 얘기하게 될 세 번째 원룸텔에서의 기억인데, 거기는 총무를 따로 두지 않고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었다. 잘 관리된 본인 원룸텔에 꽤 자부심이 있는 분이었고 그 자부심의 근거로 든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중국인은 받지 않는다’였다. 왜냐고 물으니 사장님의 경우에는 몇몇 중국인 유학생들을 받으면서 겪은 인상들이 모든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쾌적한 원룸텔을 자랑하면서 내세운 근거가 고작 그런 이유라니. 하지만 사장님의 노골적인 태도를 무례하다고 느끼는 나 역시 이전 원룸텔에서 괜한 심증을 품었던 이력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말을 검증된 정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약간 불편하게 생각하고 지나쳤던 그 모순적인 마음을 이 책을 쓰면서 다시 되새겨보니 나 자신의 무지함에 낯이 뜨거워진다. 종특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시대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을 범주화하고 낮춰보는 일이 숨 쉬듯 이루어진다. 잘못된 줄도 모르게, 잘못되었는지 검증할 틈도 없이 말이다. ‘다들 그러니까’, ‘공공연한 일이니까’로 치부되는 것들을 머리 힘 바짝 주고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할 텐데. 아직 갈 길이 멀다.
*2020년 3월에 나온 1인 가구 에세이집 《삶이 고이는 방, 호수》에 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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