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이름이 있을 테지만 아직 내가 이름을 묻지 않아서 모르고 있는 어느 덩굴 식물은 여름내 화단으로 통하는 나무 출입문 위를 휘휘 감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까지 어떻게 감겼는지 알 수 없는 덩굴은 부쩍 자라 울창하게 축 늘어졌다. 가을에는 쉽게 눈에 띄는 단풍 잎사귀에 마음을 뺏겨 덩굴 식물에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겨울이 오면 어쩌나, 내가 사랑했던 왕성한 초록들은 족히 다섯 달은 지나야 겨우 싹을 내밀 텐데, 이 앙상하고 긴 겨울을 어쩌나'라고 생각했다. 내심 어서 가줬으면 하는 손님을 맞이하듯, 곧 들이닥칠 겨울을 심드렁하게 기다리던 나는 겨울 공기가 이미 진공처럼 장악한 숲에서 덩굴 식물이 피운 하얀 솜털을 발견하고 만다.
마치 막 태어난 아기 새들이 둥지 가득 보송보송한 솜털을 서로 비비고 있는 것처럼, 그 덩굴 식물의 솜털은 나무 통로의 머리 위를 둥지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흰빛, 멀리서 보면 회색빛, 불면 날아갈 듯한 화관을 쓴 것 같기도 했다. 빛을 투과하면 바로 측백나무에 둘러도 좋을 솜방망이 전구가 될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본 솜방망이는 그리 촘촘하지 않았다. 할미꽃이 질 때처럼 길고 하얀 수염이 듬성듬성하게 성긴 솜뭉치였다. 손으로 살짝 눌렀더니 꽃자리였던 솜뭉치가 맥없이 툭 흩어졌다. 흐트러트릴 생각이 없었는데 솜털이 흩어지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바삐 주워담는 동작을 취하고 말았지만, 솜털은 너무 가볍고 쉽게 고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 솜털들도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과 구름을 타고 어느 땅에 뿌리를 내릴까. 아니면 솜털은 솜털일 뿐 씨앗이 되지는 못하는 걸까. 어느 계절에 남는 식물의 잔해는 그 계절에 찾아오는 다른 자연의 물성과도 생김이 닮았다. 솜털을 잔뜩 뿜은 덩굴의 흔적과 쌓인 눈과 목화솜은 모두 하얀색이다. 흰 것은 차기도 하고 흰 것은 보송보송하기도 하다. 차고 보송한 것이 공존하는 게 바로 눈이고, 차지 않은 날의 눈은 그냥 물이다. 대기와 물이 온도를 잃든, 동식물이 생기를 잃든, 마지막에는 모두 검거나 흰 것을 남긴다. 황량한 겨울에는 흰 것으로 회귀한 것들이 유독 눈에 띈다. 품었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흰. 흰은 언젠가 제 넋을 품어본 적 있던 물성들의 종착지에 가깝다.
*2022년 2월에 만든 에세이북 《장면채집록 흰그루》에 수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