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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09. 2016

밤에 더 밝게 빛나는 제마 엘프나 광장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마조렐 정원을 뒤로하고 마라케시 메디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일단은 좀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로코에 머무르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이 조금은 무뎌지고, 그림자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마라케시의 색깔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길가의 야자수 나무 뒤로 보이는 것은 이슬람 3대 사원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높이는 67m로 마라케시 시내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다. 기왕 지나가는 김에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제마 엘프냐 광장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광장은 노점상과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상인들의 시끌벅적한 외침과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 제마 엘프나 광장은 그렇게 오늘 하루도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모로코에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마라케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삐끼와의 불쾌한 추억들, 사하라 사막에서의 하룻밤, 에싸우이라 해변, 그리고 마조렐 정원까지 참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하지만 그중에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바로 '제마 엘프나' 광장이었다. 제마 엘프나 광장은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비록 마라케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 봐야 광장인데 유네스코 씩이나?'라며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와서 보면 안다. 왜 이 곳이 문화유산인지를,

모로코에서의 첫 번째 밤, 그리고 마지막 밤에도 어김없이 제마 엘프나 광장을 찾았다. 첫 번째 밤에는 광장 한복판에서 제마 엘프나의 분위기를 몸으로 느꼈다면, 마지막 밤에는 전망 좋은 카페에 올라 커피와 함께 멀리서 야경을 감상했다는 것이 달랐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늘은 어두워지고 땅은 점점 밝아만 간다. 커피를 마시며 야경을 감상하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득 포르투의 야경이 떠올랐다. 그때의 야경도 정말 아름다웠는데, 여기 제마엘프나의 밤 또한 절대 그에 뒤지지 않는다.


* <참고> 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포루트의 동 루이스 다리 : http://jerrystory.tistory.com/158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간 직후,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바라본 제마엘프나의 모습이다. 서쪽 하늘부터 붉은색에서 남색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하늘이 무척 이쁜 타이밍인데, 이 사진에서는 하늘의 색감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시선이 아름다운 하늘 대신에 제마 엘프나의 화려한 불빛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광장 안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카메라 줌을 당겨서 노점 사이사이의 풍경을 비춰 보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던 것만큼 북적이거나 소란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면서 제마 엘프나 광장은 더욱 뜨겁고 소란스러워졌다. 과연 이 곳이 아침에 길을 나서며 마주쳤던 그 황량한 공간이 맞나 싶을 정도다. 매일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야시장. 단지 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노점들이 만들어내는 열기야말로 사람들이 제마 엘프나를 주목하는 이유다.

제마 엘프나의 야경을 질리도록 구경하다가 문득 배고픔을 느끼고 광장으로 내려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레스토랑을 찾아 자리를 잡긴 했는데, 뭘 시켜야 할지 무척 난감하다. 애꿎은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고기가 포함된' 세트메뉴를 하나 주문했다. 고기가 나오기 전, 샐러드라고 음식이 나왔는데 토마토와 양상추 위로 마요네즈가 듬뿍 올라가 있다. 샐러드는 살이 안 찌는 음식이라고 배웠는데... 모로코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인가 보다.

뒤이어 나온 소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가격이 아마 6천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역시나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식비에 대한 상식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맛도 가격에 어울리는 수준이라는 거다.  

그렇게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모로코 여행에서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줬던 다르 유세프(Dar Youssef) 호텔과도 헤어질 시간이다. 뭐 이 곳은 이름은 호텔인데, 그냥 마라케시 메디나에 널려있는 리아드 중에 하나다. 첫날 머물렀던 'Amourd' Auberge'에 비해 와이파이가 잘 잡혀서 쭉 머물렀던 곳이다.

밤마다 꺼지지 않을 것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마라케시의 불꽃은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제마 엘프나 광장은 물론 리아드의 골목마저도 밤과는 180도 다른 아침의 모습에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이 모습이 어쩌면 내 일생동안 모로코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아쉽고 또 소중하게 다가온다.  

"Au revoir Morocco! Merci Marrak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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