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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12. 2016

세비야 대학에서 터미널을 거쳐 대성당까지, 강행군 시작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가만히 생각해보니, 포르투갈에서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온 뒤로 여행이 부쩍 편해졌던 것 같다. 외향적이고 놀기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이나 유난히 입에 잘 맞았던 음식 덕분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길에서도 '스마트폰'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드리드에서 1주일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한 달짜리 유심칩을 구매해 두었고, 그 덕에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라스 에스코바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일단 세비야 대성당으로 가봤다. 이미 폐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내일 오픈 시간이나 확인해 볼 요량이었는데, 뜻밖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약 두 시간 정도 후에 저녁 미사가 있다는 것이다. '가만있자, 오늘은 화요일인데...' 알고 보니 내가 여행하던 때가 부활절 기간 중이라 특별 미사가 있었던 것이었다. 기왕이면 현지 사람들과 함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2시간 동안 길에서 멍하니 미사 시간만 기다릴 수는 없는 법! 냉큼 스마트폰을 꺼내 2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았다. 네이버를 대충 훑어보니 세비야 대성당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세비야 대학'이 있다고 한다. 대학이라... 학교, 도서관 뭐 그런 곳들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보다야 낫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구글맵에 'Universidad de Sevilla'를 찍고 1km 정도 걸으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으리으리한 건물이 나타난다. 외관은 대학이라기보다 오히려 대저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원래 이곳이 담배공장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공장이라면 자고로 굴뚝과 그 위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스페인 대학은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카르멘은 19세기 당시, 왕립 담배공장이었던 이곳에서 일하던 경비원과 집시 여인의 사랑을 그린 작품인데, 건물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감정 묘사가 일품이다. 물론 나는 태어나서 '카르멘'을 보거나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세비야 대학은 일반인들도 무료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처음에는 입장권을 어디서 사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대학도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 않은가? 당연한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걸 보니 저 때, 많이 피곤하긴 했었나 보다. 어깨를 쫙 펴고 위풍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모습에 기가 팍 죽어버렸다. 대학 건물 안에 중정(中庭)이라니, 그것도 분수가 있는... 역시 유럽은 유럽인가 보다. 

그래도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부가 우리나라의 대학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특히나 반질반질한 복도 바닥을 보니, 문득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지금도 외국에서 온 관광객 중 누군가는 우리 학교를 구경하면서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으로 곳곳에 유교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메모해가며 블로그 소재거리를 찾고 있겠지?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으쌰 으쌰 하는 느낌의 현수막이 걸린 것을 보니, 이 곳은 학생회관임이 분명하다. 갑자기 뜻이 궁금해져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교육 파업을 그만하라는 것 같은데, 교수들이 단체로 파업이라도 했나 보다. 근데 왜 파업을 그만두라고 하는 걸까? 이 참에 어디 놀러라도 갔다 오지. ;;;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세비야 대학에는 볼만한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밖에서 건물 한 번 보고, 감탄 한 번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쓰윽 둘러보는데 30분에서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바로 돌아가 봐야 시간이 남을 것 같아 내일 론다로 가는 버스를 타는 터미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세비야 대학에서 스페인 광장 방향으로 나와 큰길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분수대가 있는 로터리가 나온다. 'Plaza de Don Juan de Austria'라는 곳인데 여기서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서 트램 정류장 근처로 가면 론다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을 수 있다. 

뭐, 생전 처음 가보는 세비야에서 이러쿵저러쿵 길 찾는 법을 설명해봐야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고, 그냥 속 편하게 구글맵에 'Estación De Autobuses Prado San Sebastian'을 입력해 보자. 구글맵을 따라가다가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 건물을 찾으면 일단 성공이다. 참고로 세비야에는 버스 터미널이 2개 있는데, 'Prado San Sebastian'에 있는 터미널은 론다로 갈 때 이용하는 곳이고, 리스본이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이 먼 도시로 이동할 때에는 'Estacion de Plaza de Armas'에 있는 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버스 노선에 따라 프라도에 정차하는 경우도 있음) 

얼추 시간을 때울 만큼 때운 것 같아 왔던 길을 되돌아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다. 스마트폰 구글맵에 의존해 길을 찾아왔을 때 놓쳤던 것들이 돌아가는 길에는 하나둘씩 시야에 들어왔다. 세비야 대학 앞에 있는 서점도 그중 하나다. 심플하지만 왠지 멋들어진 간판과 아담한 매장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책이 인상적... 

이기는 개뿔! 서점 옆 셔터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압권이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과감한 손놀림까지, 유럽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그래피티를 봤지만, 이것처럼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작품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왔던 길을 거슬로 올라가 세비야 대성당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안내를 받아 성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다행히 아직 미사가 시작되기 전이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대충 빈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성당이 정말 크고 으리으리하다. 

미사는 스페인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바이올린과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찬송가를 들으며 경건한 분위기를 몸으로 느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렸을 때, 영세만 받았을 뿐 고등학교 이후로는 군 시절을 제외하고는 성당 한 번 가보지 않은 나이롱 신자라 미사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오히려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으로서, 현지 사람들의 일상을 살짝 엿보는 호기심이 더욱 강했던 것 같다. 

결국 미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적당히 눈치를 보다 중간에 밖으로 나왔다. 아마 저 때 시각이 9시가 좀 넘었던 것 같다. 해가 완전히 진 뒤 찬란히 빛나는 세비야 대성당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가려니 갑자기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시간에 세비야에서 뭘 하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스마트폰을 꺼내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피곤함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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