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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Oct 28. 2016

세비야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히랄다 탑에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마흔두 번째 이야기

넓고 넓은 세비야 대성당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서울에서 온 수더분한 청년은 이내 체력이 떨어졌는지 어러움을 느낀다. 너무 안에만 있어서 그런 걸까? 잠깐이라도 나가서 시원한 바깥바람을 좀 쐬어야겠다. 마침 전망 좋은 탑이 하나 있다는 말에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곳, 이름이 심상찮다. 뭐가 그리 지랄맞은지 모르겠지만, 이름부터가 지랄다 탑이다. 세비야 대성당에 붙어있는 이 탑은 12세기 말, 이 곳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건축된 곳이다. 약 100여년 간의 공사 끝에 이슬람 사원을 세비야 대성당으로 리모델링을 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바로 이 탑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자면, 이 탑의 이름은 '지랄다'가 아니라 '히랄다'다. 히랄다 탑! 

총 34개 층, 높이 98m의 히랄다 탑에 오르면 세비야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다른 전망대와 달리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 계단이 아니라 비탈길로 이루어져 있다. 높으신 분들이 말을 타고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기왕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나 같은 관광객도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라면 코끼리 열차라도 만들어 주면 좋으련만,   

어둡고 좁은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살짝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그건 절대 내가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해서가 아니다. 그냥 좁은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걷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창문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를 꺼내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보자. 추억도 남기고, 체력도 남기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아, 그리고 평소에 동네 뒷산이라도 자주 오르며 체력을 키보는 것은 어떨까?  

한 층, 한 층 올라갈수록 숨이 턱턱 막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점점 기가 막힌다. 아침에 스페인 광장에 갔을 때만 해도 하늘이 잔뜩 흐렸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날씨가 꽤나 화창하다. 그나저나 세비야 대성당, 밖에서 봐도 멋지고, 안에서 봐도 멋지고, 위에서 봐도 엄청 멋지다. 세비야 대성당 만만세!!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내려다본 세비야 골목길은 역시나 평화로웠다 벌써 점심시간이 된 걸까? 식당 앞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이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오손도손 모여서 먹는 저 점심은 얼마나 맛있을까? 나도 얼른 내려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그러려면 일단 위로 올라가야겠지? 

히랄다 탑 맨 꼭대기에는 커다란 종과 그 주위를 둘러싼 작은 종들이 설치되어 있다. 히랄다 탑에 설치된 종이 총 28개라고 하는데,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 많은 종이 일제히 울리려나? 혹시라도 시간을 잘못 맞춰서 올라오면 귀청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들었다. 탑 꼭대기에는 풍향계 역할을 하는 여자 사람의 상이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 밖에서 보일 뿐 옥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히랄다 탑에 오르는 이유는 그깟 종 때문이 아니다. 바로 옥상에서 보이는 이 미칠듯한 풍경 때문이다.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강남의 골목길과는 달리 세이야의 골목은 구불구불, 이리저리, 제멋대로 이어져있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탓에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이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세비야 시내의 모습이다. 이전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다. 한 장, 한 장 올리자니 비슷한 사진으로 도배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올리기는 좀 아까운 사진이 많다. 하필 이때 가져간 스마트폰이 고물이라 파노라마 기능이 없었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살피며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가는 길은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다. 계단이 아니라 완만한 내리막이어서 그런 걸까? 서른네 개나 되는 그 많은 층을 한걸음에 달려내려 올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사진을 찍긴 했는데, 글 쓰면서 다시 보니 올라갈 때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네...  

이걸 왜 찍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히랄다 탑을 오르내리는 길에 나있는 창틀이라고 해야 하나? 히랄다 탑을 오르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이 곳, 스페인에서도 공중도덕 따위 개나 줘버린 사람들이 꽤 많은가 보다. 한국어로 된 이름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꽤나 깊게 파여있는 이름도 여럿 보이는데, 그들의 참으로 대단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세비야 대성당부터 히랄다 탑까지 둘러보고 나니, 숙제를 끝낸 것처럼 가슴이 후련해진다. 이제 세비야를 떠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바쁘고 알차게 계획했던 것을 모두 이룬 것 같다. 딱 하나만 빼고 말이다. 뭐 일단은 배가 몹시 고프니 밥이나 먹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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