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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썸남의 프사에서 아이를 보다

신기한 유전자의 세계

by 디카페인라떼 Oct 09. 2021

일명 ‘신의 꽃’이라 불리며 항산화 성분을 갖고 있어 노화를 방지하고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아주며 세포를 건강하게 만든다. (끄덕끄덕) 혈압을 낮춰줄 뿐 아니라 체지방을 감소하는 효과도 있다. 비타민이 풍부해 피부 미용에 도움을 주며 모발을 풍성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숙면을 취하는데 이롭다.(오오?) 하지만 임신 중에 차로 마시면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일으킬 수 있으며 아이의 출생 결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히비스커스의 효능을 검색하던 나는 ‘하지만’에서 손을 떨었다. 히비스커스 티백을 큰 병에 우려내 물처럼 마시던 중이었고, 임신 8주를 지나던 중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뭐지? 임신부에게 좋은 차 아니었나? 나는 누군가 ‘물처럼 마시면 좋다’ 던 임신부의 차 ‘루이보스티’를 ‘히비스커스’로 착각했고 일전에 선물 받은 히비스커스를 꾸역꾸역 찬장에서 찾아내 붉은 다홍빛의 차를 까먹지 않으려 식탁 위에 올려두고 마시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무의식의 끈이 뭔가 ‘쎄~하다’는 신호를 보내 검색창을 두드려봤고, 거기에는 무려 유산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다른 데엔 다 좋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차였는데, 내게는 그 한 가지가 전부 같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고, 바쁜 시간인지 오랜 대기 끝에 간호사 선생님과 연결이 됐다.

 “선생님. 저 히비스커스를 마셨..(울컥)어요.”

“(잘 안 들리는 듯) 네? 뭘 드셨다고요?”

“히.. 히. 비. 스. 커. 스요.”

“아.. 그게 뭐죠.?”

“차 종류 중에 하나인데, 인터넷을 보니까..”

“(애써 다독이듯) 아, 술 담배 아니시면 괜찮아요. 산모님”

“아.. 네.. (포효하듯 속으로만: 히비스커스가 뭔지도 모르 시잖아요 오오ㅠㅠ).”     


다행히 아이는 히비스커스의 공격에도 무사했지만 나는 지금도 히비스커스를 마시지 않는다. 혹시나, 혹여나 했던 그 쫄림이 지금도 생생해서다. 임신에 이르는 과정에도 임신 후 안정기에 접어드는 과정에도 무한대의 변수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 자책은 오롯이 산모의 몫이다.   

   

임신 초기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4인실을 두 명이서 썼었다. 나보다 먼저 입원한 언니(언니 동생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하자)는 몇 번의 유산을 했다고 했다. 언니는 혹시나 모를 유산의 위험성을 대비해 속설에 안 좋은 것, 부정을 탈만한 것은 다 피했다. 파인애플을 먹지 않았고,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감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밥 대신 남편이 출근 전 만들어서 배달해 준 전복 볶음과 아보카도, 소고기, 삶은 계란 등을 먹었다. 그건 아이를 지키고 싶은 모정이기도 했고, 훗날 숱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의 회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오랜 직장생활을 접었다는 언니, 매일 아침 출근  반찬을 만들어 따끈한 보온 도시락에 싸오던 그의 남편은 지금  사람을 반반씩 닮은 아이를 안고 있을까. 연락처를 나누지도 못한채 헤어졌지만 연락처가 있었대도 묻지는 못했을 이야기다. 아이가 잠든 , 나는 가끔 새벽녘까지 카카오톡의 프로필을 보며 멍을 때릴 때가 있다. 거기에는 , ,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부터 대학 시절 동기, 스터디 모임의 친구들, 취재로 만난 취재원부터 AS센터 담당자의 번호까지 빼곡하다. 그중에는 20대의 썸남이나  연인,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어느 날에는 그들의 프사가 웨딩사진이었다가, 만삭 사진이었다가, 신생아 사진이 50일 사진, 100일 사진, 돌 사진으로 바뀐다. 아이의 얼굴에는 그들의 얼굴이 있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그들을 훔쳐본다. 머리에 브릿지로 물을 들이고 영화를 좋아하던 20대 청년이었던 그가 30대의 직장인이자 아버지가 되어 있는 걸 보는 것도 신기하고, 그를 닮은 아이를 낳은 것도 신비하다. 유전자의 오묘함을 다시금 실감한다.


‘결혼은 하지 않고 세계를 다니며 순대장사를 하겠다’고 외치던 선배도 어엿이 아이의 목마를 태우고 있다. 그 안에 숨겨진 사연과 인연의 끈이야 다 알 수 없지만, 나는 다만 그 아이들이 모두 엄청 큰 확률을 뚫고 세상에 왔다는 점에서 다 같이 기특하고 갸륵하다. 어디 아이만 인가. 숱한 변수를 뚫고 어엿한 상수가 되어 이 땅에 온 이들 모두가, 열 달 동안 뱃속에서 무탈하게 견뎌낸 남녀노소 갑남을녀 필부필부 모두가 대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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