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 말을 배우는 아이의 눈으로 보면

아이스크림 똥 vs 똥 아이스크림

by 디카페인라떼

아이는 배변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응가’라고 말한다. 소변을 보아도, 큰일을 보아도, ‘응가’라며 내게 알려준다. 아이의 아빠가 집에서 무심코 커다란 (하지만 냄새는 안 나는) 방귀를 뀌면 블록을 쌓으며 놀던 아이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달려와 “아빠, 응까?!”하고 묻는다.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오줌은 ‘쉬~’이고 뿡 소리가 나는 방귀는 ‘방귀’라고 알려주었다. 방귀는 그런대로 ‘빵구’라고 잘 따라 하는데 문제는 ‘쉬’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예배시간에 몇 번인가 아이의 소리가 커지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혼선이 온 것 같다. 아이는 ‘쉬’와 ‘쉿’의 연결고리를 아직 찾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소변을 누고 손가락을 입에 대며 ‘싯!’ 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쉬는 장음으로 ‘쉬이이이’라고 알려주고 ‘쉿’은 짧게 ‘쉿!’이라고 알려주는 게 최선이다.

/동화책에 그려진 똥을 보면서 아이는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한다. 똥과 아이스크림의 그림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말을 배우는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뜻은 먼데 발음은 가까운 단어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얼마 전에는 “코코몽이 콧구멍을 파다가 코피가 나는 이야기”를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꽤나 심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한국어와 함께 한지 이제 20개월이 넘어가는 아이에게 대부분의 대화는 외국어처럼 들릴 것이고 알아들을 수 있는 몇 가지 말들은 혼란스럽게 다가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리스닝 실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기 전 내가 남편에게 아이 칫솔과 치약, 가제 수건을 가져다 달라고 은밀하게 말하면 아이는 어느새 저만치 도망가 있다. 얼마 전에는 아이를 외갓집에 맡기고 “엄마가 우리 집과 관련된 은행 대출 일로 볼 일이 좀 있어서 잠시 다녀올게”라고 했는데 아이가 결연하게 “응”하고 답하더니 할머니 옆으로 갔다. 설마 알아들은 건가. 입이 다 트이진 않았지만 말귀는 활짝 열렸다.


이 혼란 속에 아이는 고효율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소의 표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 가장 빈도가 높은 단어는 “빼줘”와 “빠져”다. 두 단어의 구성이 제법 흡사하다는 것도 효율성이 높아 보인다. 아이는 치즈의 비닐을 벗겨달라고 할 때도 “빼줘”를, 색연필의 뚜껑을 열어달라고 할 때도 “빼줘”를, 신발을 벗겨달라고 할 때도 “빼줘”를 쓴다. “빠져”는 좀 더 위협적으로 사용된다. 혼자 소파를 차지하고 싶을 때는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는 아빠에게 “빠아져어어”라고 외치고, 반찬으로 준 감자볶음에 슬쩍 당근을 겹쳐 놓으면 나지막이 “빠져”라고 말하고는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나는 아이의 말이 빠른지 느린지 알지 못한다. 무(無)의 상태로 태어난 아이가 단어의 조각들을 흡수해 블록처럼 조립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채록한다. 뽀로로를 ‘뽀뽀’라고 불렀던 것, 뽀로로의 친구 크롱을 ‘꽁콩’이라고 불렀던 것. 실내 자전거를 타는 아빠를 보며 “아빠 운둉?”하고 물었던 때나, 밖에 나가자고 하면 “출똥!”하고 뛰어나가던 일. 그러다 다시 돌아와 입을 가리며 "마뿌(마스크)!"를 찾던 것. 창밖을 지나는 빠른 자동차들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빠방 빠방”하고 가리켰던 모습 말이다.


keyword
이전 01화#1. 판타스틱 베이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