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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쓰레기에 숨겨진 생활의 발견

아직은 천천히 알아가는 단계

by 디카페인라떼

퇴근 후 남편의 일과 중 하나는 분리수거다. 간혹 야근이나 식사로 귀가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쓰레기 배출은 잊지 않는다. 부직포 가방에 담긴 생활의 잔재를 보며 남편은 자신이 부재하던 시간의 단서를 찾는다. ‘오늘도 집에 택배가 많이 왔구나’, ‘아이가 우유 먹는 양이 많이 늘었구나’ 같은.

최근에는 배출 메이트도 생겼다. 나를 닮아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는 야행성 아이는, 아빠가 쓰레기 가방을 들고 나오면 마스크 줄을 목에 걸고 신발장에 선다. 기어이 함께 가겠다며 따라나선다. 결국 분리수거장에는 온 가족이 출동한다. 늦은 밤 쓰레기를 버리러 온 이웃은 잠옷 바람으로 분리수거장에 나온 아이를 보며 ‘흠칫’ 놀란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모기를 쫓는다.


밤마실은 나름 의미가 있다. 세상에는 꽃이나 풀이나 분수대처럼 싱그러운 풍경도 있지만 이런 광경도 있다. 아이는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떼는 것, 페트병에 붙은 라벨 분리하는 것 등을 유심히 본다. 종이는 종이대로, 비닐은 비닐대로, 캔은 캔대로 나누고 모아서 버리는 게 흥미로운지 아이는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아빠가 나눠준 작은 우유팩 등을 통에 넣어보기도 한다. 이 밤나들이의 유일한 부작용은 아이는 아빠가 없는 낮시간에도 누군가 분리배출을 하고 있으면 “아빠아~?”하고 달려간다는 점이다.


한 명의 식구가 늘고 나서 배출되는 쓰레기의 양도 제법 늘었다. 그 안에는 일회용 기저귀와 물티슈, 아이 간식을 싼 소포장지, 유기농 주스팩과 플라스틱 과자통 등이 그득하다. 한 사람이 지구에 오는 일의 무게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일회용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빨고 삶아 쓸 자신이 없는 나는, 대신 낮 시간 동안 아이의 기저귀를 빼두고 아이용 속옷을 입힌다. “혹시 응가나 쉬 마려우면 엄마한테 알려줘”라고 당부한다.


아이는 아직은 변기에 앉는 걸 어색해한다. 바지를 벗지 않고 변기에 앉거나, 뚜껑을 열지 않고 앉아 의자처럼 쓴다. 혹시 제대로 앉더라도 데면데면해하다 일어난다. 우선은 차차 서로 알아가는 단계다. 남편은 근심한다. 그러다 침대 위나 소파 위, 매트 위에서 볼 일을 본다면 낭패라는 이야기다. 배변훈련이 완성되기 전에 기저귀 없이 집안을 활보하는 아이를 보는 게 그의 눈에는 늘 아슬아슬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괜찮아. 치우면 돼”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사실 나도 아이가 동작을 멈추고 갑자기 멍해지면 긴장한다. 힘을 주느라 눈 언저리부터 코끝까지 빨개지면 ‘올 것이 왔구나’ 싶다. 한 번은 집안에 설치해 둔 미끄럼을 타다가 동시에 오줌을 누어서 미끄럼틀이 후름라이드처럼 변한 적도 있지만, 남편에겐 아직 비밀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가 기저귀가 없는 촉감, 소변이 방광에 차오르는 요의 등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오줌이 마려우면 그 후엔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라는 걸 목격하며 체득하는 시간.


아이도 뭔가가 달라졌다는 걸 느끼는지, 잘 놀다가도 한 번씩 황급히 나에게 달려와 내 무릎에 살포시 앉는다. 그리고는 아주 미세하게 몸을 부르르 떤다. 그러면 적당히 기분 좋게 따스한 액체가 허벅지 앞쪽부터 정강이 뒤쪽까지 차례차례 퍼진다. 나는 내 것이 아닌 쉬가 나의 속옷을 적시는 경험의 생경함에 짐짓 놀란다. 아이는 볼일을 마치면 개운하게 무릎에서 일어난다.


아이의 속옷과 바지, 나의 속옷과 바지에 비누 거품을 내 주물러 빨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은 또렷하게 알고 있지만,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인지 그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가족과 아는 사람들 외에는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시대에 태어난 아이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그나저나 나는 기저귀를 덜 쓴 대신, 물과 세제를 더 쓰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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