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쪽파 종구를 수확합니다.
5월은 한 해의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지만 수확을 하는 작물도 있습니다. 바로 쪽파인데요. 작년에는 쪽파를 죄다 먹어치워서 종구를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훨씬 많은 양을 심은 덕분에 친정에도 한 박스 보내고 저도 파김치를 담았는데도 꽤 많이 남아 종구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작물을 재배하다 보면 모든 애들이 예쁘고 마음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조금 더 애정 하는 작물이 생깁니다. 저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는 것들이 좋더라고요. 월동 시금치, 아바타 상추, 쪽파가 대표적입니다. 세 가지 작물 모두 가을에 심는데요, 시금치는 잎이 난 채로 눈도 맞고 영하의 기온을 견디다가 봄이 오면 쑥쑥 자랍니다. 마트에서 포항초, 섬초를 보셨죠? 그 아이들이 겨울을 나는 시금치들입니다. 아바타 상추는 비닐 터널을 만들어 보온을 해주면 그대로 겨울을 납니다. 블로그 이웃분의 글을 보고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저는 비닐 터널을 만들어주지 못해 겨울에 잎이 다 얼어 죽었습니다. 이대로 죽는가 했더니 초봄부터 새 잎을 내어 멀쩡한 상추가 되었는데요, 도톰하고 아삭한 식감이 너무나 좋은 상추입니다.
쪽파는 9월 초중순 경에 심어서 김장할 때 한차례 수확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나면서 파란 잎이 다 노랗게 말라죽는데요. 그러고 또 초봄이 되면 초록 잎을 내기 시작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성해집니다. 저는 이렇게 겨울을 나고 다시 자란 쪽파를 정말 좋아합니다. 어쩐지 훨씬 더 맛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저 뇌의 장난일 뿐이라도요. 보통 3월 중순부터 3월 말 정도에 뽑아서 김치를 담아 먹습니다.
쪽파는 씨앗을 심는 게 아니라 구근(알뿌리)을 심습니다. 대파는 이른 봄에 씨앗을 심어 모종을 만들어 키우는데요, 쪽파는 5월에 다 자란 쪽파의 구근을 수확해서 잘 말린 후 그해 가을에 심습니다. 그걸 종구라고 합니다. 구근 식물의 번식을 위해 심는 구근이라는 뜻입니다. 쪽파도 꽃을 피우지만 불임성이라 씨앗을 맺지 못한다고 하네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신기합니다. 최초의 쪽파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구근을 캐서 말리고 그걸 다시 심어야 한다는 건 누가, 어쩌다 발견했을까요.
쪽파가 땅바닥으로 드러누우면 구근을 캘 시기라고 하는데요, 저희 쪽파는 대부분 서 있는 상태였지만 갈무리를 했습니다. 뿌리 쪽에 이름 모를 흰 곰팡이가 핀 애들이 좀 있었고요, 쪽파 최대의 적인 고자리파리 애벌레가 생겨서 일찍 캤습니다. 더 번지기 전에 수확하려고요. 고자리파리는 왜 쪽파 뿌리에 알을 낳는지 모르겠습니다. 애벌레가 매운 쪽파 뿌리를 갉아먹어요. 쪽파 잎이 노랗게 뜬 걸 뽑아서 뿌리를 살펴보면 영락없이 파리 애벌레가 꾸물꾸물 거립니다. 얼마나 징그러운지 몰라요. 고자리파리 애벌레에게 파 먹힌 쪽파는 아쉽지만 호미로 내려쳐 쪼개버렸습니다.
쪽파를 캐면 보통 밭에 잘 널어서 말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초록 부분을 잘라내고 집으로 가져와 하우스에 널었습니다. 반장님 어머님이 그렇게 말리면 된다고 말씀해주셨거든요. 뭐, 어떻게든 잘 말리는 게 중요한 거죠. 하우스에 널어서 이주 정도 말릴 예정입니다. 그러면 촉촉했던 쪽파 종구가 바싹 잘 마른다고 하네요. 그럼 그걸 다시 양파망에 넣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합니다. 축축한 장마의 계절에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잘 보관했다가 9월이 되면 다시 밭에 심습니다. 그러면 또 김장철에 일부를 뽑아 김장을 담고요, 남은 아이들은 추운 겨울을 나면서 노랗게 말랐다가 봄이 오기 시작하면 다시 초록잎으로 부활합니다. 그렇게 쪽파의 여정에 함께 동참하며 일 년을 보내는 거죠.
올해는 쪽파 종구를 제법 수확했습니다. 김장 때마다 외할머니가 실 같은 쪽파를 다듬는다고 엄마가 불평하셨거든요. 쪽파를 다듬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굉장히 상그럽습니다. 원체 그런 일인데 실처럼 가늘기까지 하다? 울화통이 터지는 거죠. 그래서 저희 종구를 외할머니께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올해는 외할머니께서 튼실한 쪽파로 김장을 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