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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Jul 02. 2022

월든과 소로, 그리고 이력서

이력서가 필요 없는 삶 


<월든>을 읽고 있습니다. ‘숲 속에 들어가 작은 오두막을 손수 짓고 거기서 혼자 고독하게 몇 년을 살았던 한 인간의 내밀하고 진솔한 글일 것이다’라는 막연한 호감을 늘 가지고 있던 책이었습니다. 혼자서 고독하게까지 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복잡한 욕망이 들끓는 도시를 떠나 새소리만 들리는 나름 고요한 곳에 살고 있으니, 나도 그와 어떤 부분에서는 일맥상통하지 아니하겠는가, 나라면 소로를 읽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소로는 나와 그다지 맞지는 않구나 하고요. 이 사람 꽤나 엘리트 주의자더라고요. 권위, 품위를 매우 중요시 생각하며 귀족을 예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상당한 나르시시스트로 느껴집니다.


아, 그러니까 이것은 사실 <월든>이라는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소로라는 인간에 대한 감상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책과 그 저자를 칼로 딱 썰어서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소로에 대해 막연하게 니어링 부부와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 착각을 혼자서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절반 정도는 실망을 했습니다. 월든 호수 오두막 집에서 살았지만 엄마가 만들어 준 쿠키를 먹고 엄마가 빨래를 해 줬다는 얘기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말이죠.


그럼에도 <월든>에 제시된 몇 가지 주장이나 가치관에는 매우 동조하는 바입니다.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은 짧게 베어버림으로써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우고자 했던,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던 소로의 생각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소로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아 이 생각만은 어쩜 나와 이렇게 똑같은가 싶은 얘기를 만났습니다.


단순히 나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으므로 학교 운영은 완전히 실패였다. 장사도 시도해 보았지만 사업이 자리 잡히면 10년은 걸릴 듯했고 그때쯤 되면 지옥으로 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때 사업이 번창하고 있을까 봐 두려웠다. (중략)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다. 나는 고되더라도 잘 견뎌 나갈 자신이 있었고, 아직까지는 비싼 양탄자나 고급 가구를 장만하고 산해진미를 맛보거나 그리스나 고딕 양식의 저택을 짓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4, p80


네. 저도 여러 가지 공상이라는 걸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아무 하는 일 없이, 소꿉장난 같은 농사만 지으며 살아도 되는 것인가, 남들처럼 어떤 ‘일’이라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하며 이것저것 상상해 보는 것이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다가 꼭 어떤 지점에서 날개가 꺾이는데요.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사업이 번창하고 있을까 봐 두렵다’입니다. 혹시나 번창하게 되면 어쩝니까. 저는 그 일에 또 매달려 살아야 할 텐데요.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네, 아직 번창하지도 않았고 성공하지도 않았으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번창할까 봐 두렵습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문제, 성공해도 문제인 셈입니다.


저도 자유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것에 얽매인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갑갑합니다. 나를 얽매는 그것을 겨우 끊고 이곳에 왔는데 또다시 얽매일 생각을 하다니, 어리석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이는 저만의 일입니다. 누군가는 사업이 번창하고 일이 늘어나는 것에 행복을 느낄 것이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죠. 그뿐입니다. 그저 다른 것이죠.


그러니 저는 이제 이력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백이 많은 이력서이지만 거기에 굳이 한 줄을 더 보태겠다는 생각이, 의지가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목표 지향적인 사람에게는 제가 참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입니다. 어떤 목표를 위해서 호수 밑의 오리발처럼 혼신을 다해 나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게 맞는 삶인지.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의 업을 찾아 몰두하고 노력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제 삶은, 또는 제 가치관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와 정말 맞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고요. 저 같은 사람만 가득하다면 세계 경제는 바로 무너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소로가 또 얘기해 줍니다. 원의 중심에서 그릴 수 있는 반경의 수만큼이나 살아가는 방법은 무한하다. 그러니 제 방법은 무한한 쪽에 속한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싶네요. 이력서가 필요 없는 쪽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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