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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수 May 30. 2019

추워서 죽을 거 같은데,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해!

[세계여행 Day 96]

 저 진짜 여기 오려고 러시아 왔어요. 겨울 바이칼 호수 보려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소원성취했어요.

 넓디 넓은 빙판 위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 틀어놓고 맨발로 스케이트 타다 나뒹구는게 얼마나 재밌게요? 내 몸만한 얼음덩어리 들고 와서 썰매 대신 타고 놀아도 아무도 뭐라 안해요. 오히려 덥수룩한 수염과 흰머리 난 아저씨들까지도 그러고 같이 노는 걸요!  

 꺼낸 지 3분도 안된 빵이 그대로 얼어붙어서 모닥불에 호호 녹여가면서 먹고, 포크로 밥 뜨자마자 밥알이 포크에 그대로 붙어버려서 철판에 붙은 누룽지 긁어 먹듯이 해도 좋아요. 콜라 한 병을 사서 가방에 넣고 밖에 돌아다니다 보면 콜라 슬러시가 되어버리는 마법같은 곳이니까요!


 무엇보다 여기 바이칼 호수는 살면서 여태 봐왔던 겨울 풍경 중에 최고에요.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투명한 얼음 대륙과 저 멀리 보이는 새하얀 산맥들. 해 뜨는 아침이면 눈 쌓인 지붕 위에 햇빛이 비추고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림. 밤이 오면 가로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환해지는 달.


 인터넷도 안 터지고 제대로 된 식당도 하나 없는 알혼섬 후지르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잠깐 꿈을 꾼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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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뜨면 덜컹거리는 4륜구동 우아직을 타고 빽빽한 침엽수림 사이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이 여행은 점점 끝이 보이네요.


이르쿠츠크에서 나름 '대도시' 격인 후지르(Khuzir) 마을


알혼섬 북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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