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니까 T(text)-log라고 해야 하나?
오늘은 우리 아기의 하루를 TLOG 형식으로 담아본다.
과연, 내 글솜씨로 영상만큼 재미있는 기록을 할 수 있을까.
선량한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고,
나처럼 규칙적인 사람은 '시계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서 규칙적인 아기가 태어난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아기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5시 그가 잠에서 깨어난다.
숨을 거칠게 쉬고, 헛기침을 해대며
자신을 침대에서 꺼내 주기를 요구한다.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소리를 크게 낸다.
"해가 중천에 떴으니 어서 나와 놀아달란 말이다!!"
결국 남편이 일어나 세수를 시키고, 정성스레 손발을 닦아준다.
동요를 틀어 아침 체조를 시켜주고
거실로 나가 쇼팽의 피아노 곡을 들려주며 우아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음악 감상이 끝나면 아기는 유모차를 타고 아파트 산책을 나간다.
그 사이에 나는 새벽 수유로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7시가 좀 넘어 산책에서 돌아온 아기에게 수유를 한다.
이때 나는 거의 잠에 취한 상태이다.
반면, 아기는 기분과 컨디션이 최상이다.
짧은 다리로 힘찬 발차기를 해가며
간밤에 자기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나에게 과시한다.
8시부터 수유가 끝난 아기와 놀아주는 시간이다.
아기의 놀이는 대략 7교시까지 있다. 고등학생만큼 스케줄이 빡빡한 편이다.
노래 불러주기, 책 읽어주기, 모빌 보여주기, 손수건을 잡게 해 주기,
뒤집기 연습, 집안 산책, 거울 보기 놀이, 수영 등등
한시라도 그 녀석을 심심하게 해서는 안된다.
9시 무렵, 한 시간쯤 놀다 보면 아기는 졸리다.
우리 아기는 잠을 너무나 싫어한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놀다가 곱게 잔 적이 없다.
누워서 꽁냥꽁냥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졸음이 찾아오면 갑자기 악을 쓴다.
"더 놀아야 하는데!! 아직 재밌는 게 많이 남았는데!!! 난 왜 자꾸 졸린 거야!!!! 정말 화가 난다!!!!!"
아기의 졸음을 빨리 포착하는 게 낮잠 성공의 비결이다.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할 무렵 잠옷을 입히고
'토닥토닥쉬쉬권법'으로 아기를 재운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에는
햇빛이 잘 드는 창가로 데려가 '태양광권법'을 사용한다.
잠들기 싫은 아기는 자꾸만 얼굴을 돌려 태양을 피한다.
이녀석은 나보다 똑똑한 게 분명하다.
아기를 재우면 잠시 평화가 찾아오지만
아기가 허락한 시간은 그리 후하지 않다.
10시가 되면 다시 수유를 시작하고, 놀아주고, 재우고의 반복이다.
'먹고, 놀고, 자고'를 세 번 정도 반복하면 이제 아기의 밤잠을 준비할 시간이다.
17시 45분 아기의 목욕 시간이다.
목욕은 최대한 정성스럽지만 신속하게 끝내야 한다.
목욕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자칫 길어지면 짜증을 낼 수 있다.
18시부터는 아들과 아빠의 시간이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킨 뒤 쿠션에 눕힌다.
다정한 목소리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보며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자장가를 불러주는데 신기하게 아기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신이 난 아빠는 좋아하는 발라드를 몇 곡 더 부른다.
그 시각 나는 아빠와 아들의 이중창을 들으며 미역국밥을 흡입하고,
빨래, 설거지, 집안 정리를 끝낸다.
물로만 대충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한다.
19시부터 20시까지는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상쾌하게 씻고, 에어컨이 켜진 거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거나 남편과 이야기를 한다.
더 놀고 싶지만 절대 무리해선 안된다.
무시무시한 새벽 수유가 최소 두 번이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0시와 4시 아기가 나를 깨운다.
나에게 백일의 기적은 전혀 없었고, 여전히 두 번 이상의 새벽 수유를 한다.
우리 아이는 언제 통잠을 자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자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들의 부름에 응하고 있다.
새벽 수유는 나에게 모성애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수유를 하다 졸아서 머리를 벽에 박기도하고,
온몸이 다 녹아내릴 것 같은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젖을 먹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행복하다.
자신의 울음에 엄마가 금방 달려와주었다는
신뢰감과 만족감이 아기의 얼굴에 드러난다.
젖을 충분히 먹은 아기는 배가 부르니 다시 기분 좋게 잘 수 있겠다며 미소 짓는다.
이렇게 매일 아기랑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아기와 나는 함께 자라고 있다.
힘들고 지쳐 자꾸 한숨이 나고 미간에 주름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황금기라 생각한다.
언제 우리 가족이 하루 종일 붙어있을 수 있겠는가.
작고 귀여운 아기의 손을 언제까지 맘껏 만질 수 있겠는가...
<남편의 참견>
새벽 산책 중 만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기가 아빠 잠도 못자게 하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예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