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라뇨
어쨌든 책도 3,4권 내고 어딘가에 글도 꾸준히 쓰고 있으며 앞으로 나올 책도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나는 작가가 맞긴 한 거 같다. 비록 무명 작가라고 하더라도 일단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정의한다면 작가는 작가인 것이다.
분명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번역가가 되는 건 꽤 열렬히 희망했던 거 같은데 작가가 되기를 그렇게까지 열광적으로 희망하진 않았던 거 같다. 엄청난 작품을 써낼 기세가 아니었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는데, 또 이렇게 말하면 내 글들에게도 미안하고 내 글을 감명 깊게 읽은 어느 감사한 독자님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든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작가나 번역가도 아니며 엄청난 작품이 머릿속에 구상되어 있지도 않은 내 입장에서는 스스로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째서 작가로서 계속 일하려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일인 거 같다.
나는 어째서 글을 계속 써나가는 걸까? 무명작가라 돈 벌이도 크게 안 되면서.
이 글은 그 이유를 차근차근히 나열하는 글이 아니라, 글을 전개해 나가면서 추측하고 생각해보고자 쓰는 글이기에 추측부터 해보겠다. 이러다가 결말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니 나도 모르겠다'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혹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나...?'
내가 편집을 맡은 두 권의 책, <이젠 블로그로 책 쓰기다!>와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의 작가님들은 모두 글쓰기를 좋아하신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어찌나 대단하신지, 책을 편집하면서 깜짝 놀랐을 정도다. <이젠 블로그로 책 쓰기다!>의 작가님께서는 짧은 글이라도 매일 아침마다 꾸준히 글을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 꾸준함과 성실함에 감탄했다. 게다가 두 작가님은 진심으로 글쓰기를 좋아하시고, 다른 분들께도 글쓰기의 재미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책에서 가득 묻어 나왔다. 두 분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셨고, 아낌없이 투자하셨다. 나처럼 쓰고 싶을 때만 쓰고 아니면 마는 그런 사람과는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분 작가님께서는 자신의 글을 무척 사랑하고 아끼셨다.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습과 내 모습을 비교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글쓰기를 정말 좋아한다면 두 작가님과 같은 열의가 느껴질 법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님들처럼 글에 불타오르는 경우가 드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글에 있어서만은 꾸준함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쓰고 싶을 땐 쓰고, 쓰고 싶지 않을 땐 논다. 문제는 쓰고 싶을 때가 잦지 않아, 매우 간헐적으로 글을 쓰곤 한다. 낭패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다른 훌륭한 작가님들처럼 글쓰기를 좋아하지는 않는 거 같다.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게 책을 냈고 운이 좋게 글을 쓰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 누구나 나정도는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글쓰기를 좋아해서 작가 일을 계속하려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일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아무래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글을 많이 쓰거나 말을 많이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나 미술 작품 등으로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글 또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매우 적합한 수단이지 않은가.
간혹 '앗, 이런 주제로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를 때가 있긴 하다. 아마 그 아이디어들이 내가 계속 글을 써나가나는 원동력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를 모두 글로 써내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 중 90%는 메모를 해두지 않거나, 메모를 해두더라도 귀찮아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많은 이들이 이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렇게 반짝 떠오른 글감들은 어떻게 보면 '내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니, 어쩌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수다쟁이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꼭 글로 써내어 어딘가에 게시하고 싶어하니, 이것이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혼자 블로그에 일기 정도를 끄적대면 될일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굳이 나무에게 피해를 줄 필요 없이 사이버 공간에 남기면 될 일일 텐데, 뭐하러 고통스러운 책쓰기를 진행하는 걸까.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이 사색의 나머지는 2편에서 이어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