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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린 May 26. 2021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나쁘다

        


흑백논리로 굳이 가르자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다.


하지만  그 선과 악에도 정도가 있다. 그냥 착한 사람, 꽤 착한 사람, 매우 착한 사람, 천사처럼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한편, 애매하게 착한 사람,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 착하지만 때때로 나쁜 사람, 대체로 나쁜 사람, 정말 나쁜 사람 등이 있다.


그중에 나는 '애매하게 착한 사람' 또는 '착하지만 때때로 나쁜 사람'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일컫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고 물을 수 있다. 음, 부끄럽다. 하지만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이 글의 제목을 보면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사실 그냥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종종 깨닫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꽤 입체적이다. 2D와는 거리가 먼 3D의 성격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지만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싶어 한다. 남들의 뒷담화를 까고 싶어 하지만 뒷담화하면서 그 대상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수습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 어째서 나쁜 걸까?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 앞 인도에서 오토바이에 부딪혀 넘어졌다고 치자. 오토바이는 어떤 아저씨가 걸어서 끌고 가고 있는 상태였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아무래도 크게 멍이 들 것 같았고 무척 아팠다. 근데 그 오토바이 아저씨가 고개만 꾸벅하고는 그냥 가려고 한다. 이때,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일단 그 아저씨를 힘겹게 붙잡아서 묻긴 한다. "저기요, 그냥 가시면 안 될 거 같은데요. 전화번호라도..."


애매하게 착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이 정도는 보험 처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륜차와 충돌했으니까. 그냥 지나가려는 아저씨가 너무나도 괘씸하다. 하지만 곧이어, 지나가는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난처한 듯이 이렇게 말한다.


"미안해... 근데 그냥 가면 안될까? 내가 저 움막에 살아서..."


그제야 아저씨의 행색을 살펴보니 등이 굽은 노인에 가까웠다. 오토바이도 차림도 허름해 보인다. 잠시 마음이 움찔거리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시면 안 된다며 일단 붙잡는다. 하지만 노인은 사정한다. 자신은 움막에 산다고. 어쩌지? 어쩌지? 망설이다가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일단 노인의 번호를 받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애매하게 착한 사람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그 노인의 행색을 보아하니 넉넉지 않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다. 물론 애매하게 착한 사람 또한 갑부가 아니며, 실비 보험도 들어두지 않은 상태다. 이대로라면 오로지 자신이 치료비를 모두 뒤집어쓸 형편이다. 억울했다. 그러니까 왜 오토바이를 도보에서 끌고 다닌담. 하지만 노인의 행색과 '움막에 산다'는 말이 자꾸 생각난다. 내가 치료비를 요구하면? 요구하면??? 와, 그야말로 약자를 괴롭히는 자비 없는 이를 그리기에 딱 좋은 풍경이 될 것이며, 정말 움막에 산다면 그 노인을 절망으로 빠트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는데...............

치료비를 절반이나 일부라도 요구해볼까 싶지만, 그 일부의 치료비도 그 노인에게는 어려운 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하지만!...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억울하다. 그래서 결국 노인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어렵사리 노인에게 치료비의 1/3을 요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마음이 매우 매우 매우!!! 불편하다. 며칠 동안 죄인이 된 것처럼 좌불안석이다. 혹시 그 노인이 빚이라도 지면 어쩌지? 아니면 돈을 모으려 며칠 식사를 굶으면 어쩌지? 그게 모두 나 때문이라고???


그렇게 약 3일 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결심하고 그 노인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치료비 말인데요, 그냥 안 주셔도 될 거 같아요........."


그러자, 그 노인은 곤란해하며 말한다.


"어쩌죠, 이미 돈을 다 마련했는데... 일부러 물건까지 팔았습니다."


"..... 아니, 그렇게 빨리요? 안 주셔도 되니 다시 물건을 받을 수는 없나요?"


"이미 판 물건이잖아요. 이걸 어떻게 다시 가져옵니까."


"아니 그래도... 그래도 아끼시는 거니 다시 가져오는 게..."


"(돈을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걸까.) 어려울 거 같습니다."


결국,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아주아주 마음 불편한 돈을 받고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린다.




.

.

.


애매하게 착한 사람의 태도가 짜증나는가?


그렇다. 짜증난다. 이러한 이유로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고 타인에게도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해놓고, 한없이 죄책감을 느끼며 무르려 한다.


차라리 무언가를 요구하고 주장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편이 일관성이 있다.

그러면 상대방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거고, 무리를 해서 일이 복잡해질 일도 없으니 상대도 편하다.


하지만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꼭 번복을 한다.

어떻게 보면 자기 마음이 편하고자 수를 쓰는 사람인 것이다.

정말 왕재수에 짜증나는 인간이다.

어차피 상대에게 미안할 일이라면, 애초에 감수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꼭 처음에는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곤 수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어찌 보면 '선'이 아닌 본의 아니게 '악'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행이도 오토바이 이야기는 약 10년 전에 있었던 일을 15% 정도 섞어 만든 이야기이므로 실제로 이런 일은 없었음을 명시한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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