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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린 Aug 15. 2021

나의 허먼밀러 이야기

 가끔, 내 의자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과거에 내가 의자 자랑을 책이나 블로그에서 몇 번이나 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면 궁금해하실 만도 하지.


 먼저 이 글을 통해 나를 처음 접하시는 많은 분들을 위해 다시 의자 자랑을 해보겠다. 내가 몇 년째 사용하는 업무용 의자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네이버 등에서 사용한다고 알려진 허먼밀러 에어론이다. 가격은 몇 년 전에 백오십만 원 정도를 주고 구매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가구에 취미가 있어 몇 백만 원짜리 식탁이나 데스크를 구매하는 사람은 '살 만한 가격이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까지는 독립을 해본 적도 없어, 평생 50만 원이 넘는 가구를 사본 적 없는 내가 이 의자를 살 때는 꽤 큰 결심이 필요했다. 

 의자를 사게 된 계기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친구가 이 의자를 강력하게 추천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팔랑귀인 나는 친구에게 이 의자가 좋다는 말을 점점 듣다 보니 이 의자가 무척 탐이 났다.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일을 의자에 앉아서 하는 내게 의자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러니 의자 하나쯤은 제대로 된 좋은 것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좋은 의자를 사용하는 편이 허리나 엉덩이, 자세에도 더 좋을 테니까. 

 그래서 나름 큰 마음을 먹고 백오십만 원이 넘는 사무용 의자를 구매했다. 가끔 포스트잇 따위를 구매할 때면 '회사에 다닐 땐 사무용품 구매 경비를 청구할 수 있었는데...'라며 생각에 잠기는데, 회사에 다녔더라도 허먼밀러 의자까지 경비 청구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 잠깐의 아쉬움도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큰 마음먹고 구매한 의자님이 집에 도착하시던 날을 기억한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의자님이 완벽하게 조립되신 상태로 엘리베이터에서 위풍당당하게 내리셨다. 내가 완벽하게 조립된 모습에 놀라워하니, 배송해 주신 분께서 미국에서 완 조립되어 오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굉장하다.

 아무튼 의자가 도착한 뒤, 주의사항을 듣고 직접 사용해보니 꽤 감격스러웠다. 앉는 부분이 메쉬로 되어 있어서 통풍이 잘됐고, 텐션이 강해 엉덩이가 답답하지 않았다. 전에는 의자에 오래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답답하고 살이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등을 조금 구부정하게 굽혀도 허리를 언제나 받혀주었다. 어떤 자세를 하든 허리를 받쳐주는 게 신기할 뿐이다. 아마 이 비싼 의자를 헛되이 놀리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을 해야 할 테지. 그러니 더 열심히 번역하고, 좋은 프리랜서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 의자에 앉아서 정말 많은 번역일을 할 수 있기를, 글을 쓸 수 있기를. 혼자 기원했다.


 그리고 의자를 구매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동안 이 의자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원고도 열심히 썼다. 꽤 많은 작업물을 이 의자와 함께 했다. 아마 의자를 구매하지 않았더라도 프로젝트 진행과 원고 쓰기를 진행했겠지만, 그래도 의자의 샀을 때의 내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제 내 프리랜서 라이프의 절반 정도는 이 의자와 함께 했다. 신중을 기해 곰곰이 생각한 끝에 구매한 물건인 만큼, 애착도 더 가는 법. 큰 맘먹고 구매한 의자라서 그런지, 다른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 적도 없다. 그러고 보니 결혼 후 이사를 갈 때, "비싼 의자니 이삿짐센터에 맡기지 말고 의자만 우리가 직접 운반하자"라고 남편한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은, "비싼 건 알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TV와 냉장고, 세탁기가 더 비싼데?"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맞는 말이라 웃으면서 이삿짐센터에 맡겨 잘 운반했는데, 새삼 내가 의자를 되게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격을 제쳐놓고도 정도 듬뿍 들었나 보다. 


앞으로도 이 의자 위에서 더 많은 일을 의뢰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초 치는 말: 새로 나온 은색 허먼밀러가 요새 조금 탐나긴 하더라. 하지만 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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