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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써니 Jul 04. 2022

ESTJ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길게 말하면 입 아파서 글로 쓰는 설명서

브런치에 글을 얼마 만에 쓰는 건지...라고 썼지만 '작가의 서랍' 메뉴엔 발간되지 않은 나의 비밀 이야기가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브런치에 접속할 때마다 꺼내보는 쓰다만 매거진의 글. 그 글들은 모두를 위해 앞으로도 조용히 잠들어 있는 걸로.


잠들어 있는 글 때문에 사실 접속하고도 계속 마음을 잡지 못했는데 , 이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정리를 하면서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조금이나마 써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머리는 안 될 것 같고. 그냥 나의 말버릇을 조금 고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기록을 시작해 볼까 한다.


"말 좀 예쁘게 해." 남편이 백번은 넘게 했던 말

"너는 애가 왜 그렇게 매정하니." 엄마가 이백 번은 넘게 했던 말

"화내지 마." 같이 일한 사람들이 삼백 번은 넘게 했던 말

"또 잔소리한다." 친구들이 오백 번은 넘게 했던 말


상황이 답답하거나, 내 마음에 안 들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지적하는 것 같은 말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바로 인지하고 말투를 바꿔버리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정신이 나갔나'라는 생각을 상대방이 할 수도 있겠다 싶을 때도 많다. 방금 화냈다가 3초 후에 말투를 바꾸니;;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앱에서 오류가 난 걸 확인하고 개발자한테

(A)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이렇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라고 해 놓고는 바로 "그럼~ 이거↘ 언제 수정될까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사과를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언성 높여서 죄송해요'를 매일 할 수는 없으니까 이런 경우는 대부분 다음 멘트를 옅은 미소를 포함한 공손함으로 때우고 만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쌓여 있을 땐 기프티콘을 쏘던지.


천천히, 차근차근, 예쁘게 말하기가 특히 어려운 이유는 판단이 빠른 J의 성향 때문이다.

이래저래 하면 각이 딱! 나오는데, 남들은 이걸 왜 모를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오면서 일단 뇌에서 떠오른 말들을 다다다다 내뱉는 거다.


하지만 비단 말투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이렇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이렇게 얘기해도 나에 대해 상대방이 느끼는 건 비둥 비둥 할 것이다.


이 문장을 이제 F스럽게 바꿔보자.

(B) "개발자님, 업무 많아서 힘드시죠. 바쁘신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전에도 한번 생각해 봤었는데요, 이걸 이렇게 하면 지난번처럼 오류가 또 생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지난번에도 한번 더 언급해 드리긴 했었는데요.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개발자님이 바쁘셔서 이 부분을 놓치셨던 것 같아요. 이렇게 오류가 나면 안 될 것 같은데, 개발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한번 더 미리 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한 것 같아 죄송하네요."


후....... 웹브라우저 기준 한 줄이 다섯 줄이 되어 버렸다. 기존의 나라면 저 다섯 줄을 하는 시간 동안에 이미 할 말 다 하고, 그 자리를 뜨고도 남았을 거다. 왜, 왜, 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일하면 사납다거나, 무섭다고 하는 것인가. 그냥 팩트를 말했을 뿐인데.


"내가↘이럴 줄 알았어요. 이렇게 되지 않게↘해달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문장을 AI 식으로 풀어쓴다면 이렇다.

(C) 1. 저는 이렇게 오류가 생길 줄 예상을 했었습니다.

2. 그래서 미리 방지를 요청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군요.

3. 제가 반복해서 요청을 드렸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C)보다는 (A)가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신속하고, 빠르고, 정확한 단어를 사용했을 뿐인데 팩폭을 하면 내 인성이 깎아 내려간다.


(예쁘게 말하기 연습을 하려고 쓴 글인데, 점점 자기 방어가 되어가고 있는....)


근데 문제는 이런 답답해하는 말투가 안 친한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들한테 더 자주 사용되는 데 있다. 업무적인 공손함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A)에서 보다 공적인 대화체가 된다.

(D) "이 부분이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빠른 수정 부탁드립니다."


쓰고 보니 그냥 (D)가 제일 무난한 것 같은데, 정이 없게 느껴지긴 한다. 저건 이메일용 말투니까.


한 가지 문장을 예로 들었을 뿐인데도, 내 문제가 너무나 잘 보이는구나.

역시 사람은 눈으로 봐야 명확하게 인지하는 법!


욱! 하는 순간을 잘 모았다가 앞으로 종종 이렇게 해설을 붙여볼까 한다.

물론 글의 소재가 안 나와야 나의 인성이 좋게 간직된 텐데, 사람이 또 쉽게 변하지는 않으니 소재는 아마도 넘치고 넘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이번 주부터 예쁘게 말하기 연습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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