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둔형 최작가 Dec 29. 2021

연말의 야속함 속에서

2021. 짧은생각#6.(211229)

Trotting Horse Time 2.25 (1872), John J. Mcauliffe

  기어코 버텼다. 아니 버텨졌다,가 적당할까. 딱히, 작년보다 더 힘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서도, 매년 더 버겁고, 힘들게 느껴진다. 또 해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음’ 보단, ‘해야만 한다’ 내지, ‘할 수 있다’ 정도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습관처럼. 그래서일까 마땅히 나에게 주어진 역할, 해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나서 맞이하게 되는 연말은. 해냈다는 뿌듯함 보단 어떻게든 버텨냈다는 안도감이 앞선다.


  뭔가를 해 내고 싶었던 어린 날들엔 ‘기대’가 있었다. 내년이나 내일, 하물며 다음 시간에 대한 설렘이 가득 찼었다. 막상 그 내년에, 또 내일에 뭔가를 해내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다. 부담 없는 기대, 실패 없는 기회였다. 뭐가 잘못된 걸까. 그때도 지금도, 내일과 내년은 똑같이 반복된다. 24시간이 지나면 내일이고, 그렇게 365일이 지났을 즈음 내년이 된다. 시간과 기회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결과에 대한 부담은 달라졌다. 부양할 가족이 생겼고, 잃지 말아야 할(정확히는 잊지 말아야 할 결제일 같은) 의무가 늘었다. 실패해도 괜찮아서 실패가 존재하지 않던 어린 날과, 실패해선 안 되는 지금. 두 시차 사이엔 ‘실패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젠 성공보단 실패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막막한 또 다른 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 기대보단 우려가 앞서고, 무덤덤했다가 울컥. 긴장이 올라오지만, 어른스럽게 꾹 참아본다. 뭔가를 이루기보단,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의무감으로, 단출한 계획을 꾹꾹 눌러 담는다.


  시간은 흘렀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이 든 어른이 되었다. 시간은, 시간을 비교적 많이 겪은 사람들에게 더 야박하게 흐른. 흘러내린다. 새로움에 ‘기대’가 ‘우려’가 되었고, 가슴 뛰던 ‘설렘’은 다리 떨리는 ‘걱정’으로, 미지의 세상을 개척하기보단 현실의 소중함을 지키려 노력하는. 그러니까 다 똑같은 어른이 되어간다. 부모님은 더 힘드셨겠지. 문득, 대상 없는 야속함을 곱씹다 보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감사했고, 또 ‘그들의 행복을 위해’라는 다짐을 한다.


  또 다른 연초의 다짐으로 빠르게 흐르는 올해의 끝자락에서, 한 살 더 나이 들어감과 우직하게 버텨내야 하는 의무와 줄곧 ‘가족의 건강’을 위한다며 기도하던 부모님의 마음을. 작년보다 조금 더 이해해간다. 내년도 모두가 건강하고, 올해보다 더. 행복하길.

작가의 이전글 ESG는 정말 우리를 위한 일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