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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Dec 21. 2021

ESG는 정말 우리를 위한 일인가?

2021. 짧은생각#5.(211221)

Capital punishment means them without the capital get the punishment(1978), Peg Averill

  ESG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런 말투, 아이템 모두 식상하기 그지없지만,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는다. 새 시대, 이름도 고급 진 ‘뉴-노멀 시대’ 새로운 경영의 '규칙'이 되었다. 유행에 무척이나 둔감한 나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ESG 타령에 뜬금없이 머리가 복잡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무척이나 사적으로 ESG를 바라봤다. 어설픈 알파벳 조합이 지금 우리 세상에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환경, 사회적 가치가, 게다가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나 싶었다. 다들 ESG가 중요하다고 난리다. 음료기업들은 라벨을 없앴고, 샴푸는 고체가 되고, 치약은 씹어먹기에 이르렀다. 어떤 기업은 석탄 연료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까지 했고, 우리에게 친근한 빅 테크 기업에서도 스마트폰 패키지에 충전기 제공을 빼버렸다. 그래 좋다. 어쩌면, 당연히 이렇게, 환경(E)을 위해 결단을 내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 사회적 가치에서는 소외계층이나 영세한 중소기업, 또 인권, 사회적 다양성, 지역사회 등등등 대략 복지나 사회운동이나, 비슷하게 뭔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죄다 때려 넣었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는 기업 경영의 청렴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 그리고 사회적 가치가 기존 복지에서, 혹은 사회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나아가 거버넌스가 무조건 청렴으로 흐르는 이유는. 아무래도 갈피를 못 잡은 까닭으로 본다.     


  좋다. ESG건, LPG나 MSG건 상관없다. 기업은 정당하게 돈을 벌고, 고용을 늘리고, 조금 더 깨끗한 환경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거창한 수식으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게다가 언제나, 누군가는 요구했던 기업의 역할이었다. 과연, 이제 기업은 ESG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지금도. 또 앞으로도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쪽으로 기운다.


  이유는 단순하다. 환경과 사회적 가치 구현과 거버넌스의 전면적 개편은 분명. 사회, 환경, 시민이나 국민의 시선에서 요구되어야 하는 가치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ESG는 사회와 환경, 소비자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경제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기업에게 있어 ESG 가치는 부득이한 ‘비용 증가’ 뒤에 따르는 ‘더 큰 이익’에 본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종합해보면 ESG는 사회적 가치라기보단 경영 백서에 한 챕터 추가하면 되는 ‘경영 옵션’에 불과하다.     


  어떤 기업 관계자가 예능에 출연해 자사 친환경 제품 라인업을 설명했다. 획기적인. 환경친화적인 샴푸라고 했다. 많은 개발 비용이 투자되었고, 어쩔 수 없이 제품의 가격이 올라갔다는 정보도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며, 자신들의 기업은 ESG라는 미지의 영역을 도전적으로 개척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며, 생각해본다. 고체 샴푸는 누구의 필요에서부터 시작된 제품일까. 나는 고체 샴푸가 필요한가. 가격을 더 주고서라도, 난. 환경을 위한 고체 샴푸를 쓰려고 할까. 글쎄. 가뜩이나 오름차순으로 가장 저렴한 제품으로 골라 쓰던 샴푸를. 더 불편하면서도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환경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선택할 수 있을까.     


  기업들의 경영전략이 사회적 의무로 다가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비싼, 그렇지만 환경에 도움을 준다는 샴푸를 쓸 의향이 전혀 없는 난. 환경 따위가 어떻게 되던지 전혀 상관도 없는 몰지각한 사람일까. 난. 이미 비닐봉지를 몇 년째 사용하지도 않았고, 매주 철저하게 재활용품을 분류해서 배출하고,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갔다던 폼클렌징도 비누로 바꿨는데. 여전히 난. 환경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또 동시에 알게 모르게, 불만도 쌓였다. 애초에 기업에서 환경친화적인 제품만 만들고, 팔았으면 해결되었을 문제를. 왜 소비자가, 내가.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기업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어찌 보면 강압적이기까지 한), 해당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기여해야 할까. 소비자에게 친환경의 의무를 전가하는 것이 ESG의 경영철학일까.     


  ESG라는 게임의 규칙 안에서도 각가지 가치는 충동한다. ‘친환경’ 이미지는 원재료 가격, 결과적으로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럼 자연스럽게,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을 누구나 차별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가 위협받고, 나아가,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을 제공해야 하는 기업의 원초적인 목적 달성도 어렵게 된다.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제품의 가격을 더 올리고, 그중에 일부는 ‘기부’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 또 다른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실험과 재료와 연료와 자본을 필요로 하게 된다. 즉,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수고, 더 큰 오염이라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기존보다 더 비싼, 환경을 오염시켜가며 새롭게 탄생한 ‘친환경’ 제품에는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한 목적만이 남게 된다. 환경을 위한 가치가 환경을 파괴했고, 사회적 가치는 무시되었지만, 기업과 주주는 행복해한다. 결국, 돌고 돌다 보면 환경도, 사회적 가치도, 거버넌스도, 서로가 충돌하고,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결국엔 ‘돈’으로 모든 논리가 수렴된다. 기업은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데 이전의 제품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투자금과 이윤까지 더해 더 높은 가격으로 책정된다. 이로써 세상에 선보이는 새로운 제품은 환경과 사회적 가치, 거버넌스에 대한 다각적인 고민의 결정체로써, (같은 성분이겠지만) 기존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는다. 이제 소비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환경이 오염되었다는 반성과 함께 자발적으로 더 비싼, ‘친환경’이라 부르는 제품을. 사회적 의무라며 구매하기 시작한다. 소비자는 돈과 편리, 그동안의 생활 습관을 잃었고,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되는 순환 사슬이 완성된다. (과연. 그렇게 제작되고 소비되는 ‘친환경’ 제품은 환경 친화적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자자’인 요즈음 세상에서, 위처럼 고리타분하고 수동적인 소비자가 있겠냐만은. 사회적 가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본의 배를 채우려는 행동에 대한 반감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 최근에 기업들이 늘어놓는 말장난과 ESG라는 행위의 뒤처리는 소비자의 몫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히려 환경과 사회와 민주주의적 가치가 새로운 기업 경영의 철학으로 부상하는 까닭은 그동안 이를 실천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 나아가, 환경과 사회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등한시하고 취득했던,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촉구하는 시대정신이다.


  환경을 위해, 사회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보다 더 조화롭고 행복한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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