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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티아고 김솔 Nov 16. 2022

6/ 길에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흥분과 설렘이 넘치던 여행의 시작을 지나오면 특별했던 것들도 조금씩 익숙해집니다. 사진으로 보던 예쁜 길과 걷는 사람들은 평범한 풍경이 되고, 우리는 반복되는 여행 일과에 서서히 적응하며 자리를 잡아갑니다. 산티아고 도보여행의 하루는 아주 심플해요. 아침에 일어나 걷고, 쉬고, 다시 걷고, 숙소를 찾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아침에 걷는 시간이 가장 좋았어요. 지쳐있던 전날의 컨디션이 다시 충전이 돼 가장 맑고 상쾌한 시간이거든요. 덥지도 않고. 새소리까지 들으면 거의 전원생활이나 다름없었어요. 특히 은의 길은 광활한 초원이나 밭, 목장을 가로질러 가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전원의 풍경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때문에 은의 길은 지루하고 고독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이 길이 그렇게나 힘들 수 없어요.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고 끝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같은 길이지만 내가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아름다운 곳이 될 수도, 고통스러운 곳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바르에서 레몬 맥주는 못 참지. 나와 엄마의 최애 음료


이럴 때 바르(bar: 커피, 음료,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와 같은 곳)는 거의 오아시스예요. 다음날 일정을 계획할 때 바르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미리 찾아두고 거기에 맞춰 체력 조절을 했을 정도니, 휴식은 굉장히 중요했어요. 걸으면서 제가 한 일 중 하나가 바르 위치 알림 서비스.


“다음 바르까지 4km 정도 남았어요 “

“오늘 도착 마을 갈 때까지 앞으로 바르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여기서 그냥 앉아서 쉬다 가야 될 것 같아요”

 

매일 마주치는 독일 언니(?)가 지나가다 찍어주었다.

하지만 바르도 없고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이 없을 때는 그냥 땅바닥에 앉아 쉬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예약 없이 갔던 곳. 딱 하나 남았던 방이었는데 pilgrim(순례객) 할인을 받은 호텔이다. 나는 2층에서 잤다


이렇게 걷고 쉬골 반복하다 보면 오늘 도착 마을을 만납니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합니다.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인 알베르게라는 곳 외에도 에어비앤비 아파트, 호텔 같은 곳에서 많이 묵었어요. 알베르게에는 생활 패턴이 서로 다른 순례객이 많다 보니, 제대로 쉬지 못해 피로가 누적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먹고, 씻고, 자는 것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하여 알베르게보다는 일반 숙소를 많이 찾은 편입니다.


부엌 사용이 가능한 아파트로 숙소를 잡으면 간식 준비가 거창해진다


중요한 일과가 남았어요. 바로 장보기. 다음날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길 위에서 먹을 간식, 과일, 빵, 물은 기본으로 매일 사는 품목이고, 다음날 일정에 따라 식량 계획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다음날 구간이 식사할 곳이 없을 것 같으면 샌드위치와 같은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할 때도 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작은 마을 상점은 모두 닫기 때문에 미리 일정을 계획해서 장을 봐 두어야 해요.



산티아고 도보 여행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지만 단단합니다. 하루가 꽉 차요. 의외로 바쁘기도 합니다. 어쩌면 길 위에서 걷는 시간 외의 생활이 더욱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의, 식, 주를 해결하는 아주 평범한 행위들이지만, 뭐 하나 빠뜨리면 체력적으로 타격이 오고 피로가 누적되기 때문에 소홀할 수가 없어요. 길 위의 생활은 이렇게 매일을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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