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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티아고 김솔 Nov 19. 2022

7/ 사서 고생 중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출발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다. 이 날은 Cañaveral에서 Riolobos로 가는 구간으로 약 20km, 부담스러운 킬로 수는 아니지만 하루 종일 비 소식이 있는 날은 평소보다 힘들 각오를 해야 한다. 비가 오면 팔다리는 더 무겁고, 제 때 쉬기도 어렵다. 쫄딱 젖는 옷가지도 성가시게 한다. 모든 과정이 불편함의 연속. 하지만 어째, 가는 수밖에.

하루를 시작한다, 파이팅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깔딱 고개를 만난다. 어디로 올려 보내려고 하는지 돌밭 언덕이 가파르게 이어진다. 이럴 땐 그냥 내 발등만 보고 걷는 편이다. 어휴 언제 올라가나 싶어 고개를 들고 앞을 보면 너무 깜깜하다. 그래서 긴 시선보다는 한 치 앞만 보고 가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다가 아래 한 번 내려다보면 꽤 높은 지점에 서있다. 몇 번 반복하면 된다. 출발했던 마을이 발아래에 내려다 보인다.

숨 넘어간다


오늘은 종일 광활한 목장을 지난다. 하루 일정이 여러 마을을 거쳐가는 구간이면 bar가 나오는 걸 기대해 볼 법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언감생심. 비가 그치질 않아 땅바닥에 앉아 쉴 수도 없다. 비바람을 내내 맞고 걸어서 체온도 체력도 같이 떨어진다.


“ 뜨뜻한 커피 하나 때리면 좋겠다”

“커피 한 모금만 넘기면 부스터 달고 갈 것 같은데”

1유로짜리 커피가 간절하다!

다리가 백근천근만근


엄마는 유독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집에서 생활할 때도 비 오는 궂은날은 반기지 않았는데, 타지에 와서 그것도 길바닥에서 비를 맞으며 걷는 게 여간 맘이 쓰인다. ‘고생하는 여행이다 ‘ 우리 모두 합의하고 스스로 선택했지만, 막상 이렇게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을 만나면 엄마는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올라온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추진한 아빠는 해내고 마는 성격인지라 의지가 풀 착장 되어 사실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이전에 경험했던 프랑스길과는 달리 은의길은 생각보다 더 외롭고 길다는 것을 하루하루 길 위에서 체감한다. 섬세한 편이라 같은 상황일지라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서로를 살펴야 한다. 사서 하는 고생도 힘이 들긴 한다.

소, 말 동물들이 출입구를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을 꼭 닫아야 한다.


비는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내린 덕에(?) 쉬지 않고 걸었더니 평소보다 마을에 일찍 닿았다. 출발하고 오늘 처음 밟아보는 보도블럭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앗, 숙소는 마을 끝에 있다. 막판 스퍼트를 올려본다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이제는 누워 쉴 수 있다는 안도과 피로가 앞선다. 하루의 감상도 피곤 앞에서는 무력하다. 몸은 녹고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습한 날 난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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