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출발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다. 이 날은 Cañaveral에서 Riolobos로 가는 구간으로 약 20km, 부담스러운 킬로 수는 아니지만 하루 종일 비 소식이 있는 날은 평소보다 힘들 각오를 해야 한다. 비가 오면 팔다리는 더 무겁고, 제 때 쉬기도 어렵다. 쫄딱 젖는 옷가지도 성가시게 한다. 모든 과정이 불편함의 연속. 하지만 어째, 가는 수밖에.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깔딱 고개를 만난다. 어디로 올려 보내려고 하는지 돌밭 언덕이 가파르게 이어진다. 이럴 땐 그냥 내 발등만 보고 걷는 편이다. 어휴 언제 올라가나 싶어 고개를 들고 앞을 보면 너무 깜깜하다. 그래서 긴 시선보다는 한 치 앞만 보고 가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다가 아래 한 번 내려다보면 꽤 높은 지점에 서있다. 몇 번 반복하면 된다. 출발했던 마을이 발아래에 내려다 보인다.
오늘은 종일 광활한 목장을 지난다. 하루 일정이 여러 마을을 거쳐가는 구간이면 bar가 나오는 걸 기대해 볼 법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언감생심. 비가 그치질 않아 땅바닥에 앉아 쉴 수도 없다. 비바람을 내내 맞고 걸어서 체온도 체력도 같이 떨어진다.
“ 뜨뜻한 커피 하나 때리면 좋겠다”
“커피 한 모금만 넘기면 부스터 달고 갈 것 같은데”
1유로짜리 커피가 간절하다!
엄마는 유독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집에서 생활할 때도 비 오는 궂은날은 반기지 않았는데, 타지에 와서 그것도 길바닥에서 비를 맞으며 걷는 게 여간 맘이 쓰인다. ‘고생하는 여행이다 ‘ 우리 모두 합의하고 스스로 선택했지만, 막상 이렇게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을 만나면 엄마는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올라온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추진한 아빠는 해내고 마는 성격인지라 의지가 풀 착장 되어 사실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이전에 경험했던 프랑스길과는 달리 은의길은 생각보다 더 외롭고 길다는 것을 하루하루 길 위에서 체감한다. 섬세한 편이라 같은 상황일지라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서로를 살펴야 한다. 사서 하는 고생도 힘이 들긴 한다.
비는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내린 덕에(?) 쉬지 않고 걸었더니 평소보다 마을에 일찍 닿았다. 출발하고 오늘 처음 밟아보는 보도블럭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이제는 누워 쉴 수 있다는 안도과 피로가 앞선다. 하루의 감상도 피곤 앞에서는 무력하다. 몸은 녹고 눈꺼풀은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