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Jul 14. 2020

미국에서 코로나를 만났을 때-육아편

육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없어도 어렵다. 근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니까 정말 더 죽을 맛이다. 걷지 못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힘이 넘치는 어린이를 키우는 건 얼마나 더 힘이 들까.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한 육아 프로그램이 몇 개 있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모두 중단했고, 야심 차게 계획했던 아기의 돌잔치도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스토리 타임


미국은 공공도서관의 스토리 타임(Story time, 혹은 Lap-sit Time)이 매우 잘 되어 있다. 가격은 무료이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전에 스토리 타임이 열린다. 구성은 만 12개월 미만의 Baby와 그 이상의 Toddler을 대상으로 하는데 시간마다 정해진 연령대가 적혀있어서 나이에 맞게 그냥 가면 된다. 스토리 타임에 가기 전에 우리 부부는 수업 중에 부모들이 신발을 벗는지 궁금했었다. 7개월부터 스토리 타임에 나가기 시작한 우리 아기가 막 기어 다녀도 되는 환경인가 어디 물어볼 데는 없고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결론은 신발은 안 벗는다. 엄마들이 신발로 막 걸어 다닌 교실에서 그냥 아기들을 풀어놓는다. 기어 다니든 빨아먹든 그냥 풀어놓는다. 장난감도 공용으로 바닥에 풀어놓고 주워서 돌려가며 빨아먹는다(...) 한국 육아 감성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 분위기이지만 몇 번 나가다 보면 적응이 된다고 한다.(깔끔쟁이 남편 피셜) 하지만, 코로나 이후엔 절대 못 갈 곳이 되고야 말았다. 다같이 빨아먹는 장난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 저 공들이 모든 아이들이 같이 빨아먹는 그 공이다.


아기 수영장


우리 아기는 7개월부터 수영장에 나갔다. 미국은 4개월부터 아기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가 안 됐는데 살다 보니 이곳은 물만 보이면 옷 벗어 제끼고 뛰어 들어가는 문화라서 어릴 때부터 물과 친해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 곳이다. 동네에 아기가 다닐만한 곳은 두 군데였다. 등록하기 전에 두 군데를 모두 가보았는데 한 군데는 생존 수영을 알려주는 곳. 아기를 그냥 물에 넣고 던진다(...) 말 그대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2달은 기다려야 한단다. 기다릴 자신도 없고 도저히 우리 취향이 아니어서 포기. 두 번째는 ‘금붕어 수영교실(Goldfish Swimschool)’인데 말 그대로 금붕어처럼 어설프게 수영해도 다 괜찮다는 곳이었다. 시설이 일단 너무너무 좋았고, 가격이 비싸서인지 대기도 없었다. 갔다 온 날 바로 등록하고 수영수업에 나가기 시작했다. 수업은 한 번에 4명까지 수강하는데 부모가 한 명 꼭 같이 들어간다. 튜브나 구명조끼 없이 그냥 물에 둥둥 띄우고 노는 형식이다. 선생님은 2명인데 한 명은 물속에서 수업해주시는 분이고, 한 명은 칭찬담당이다(진짜 미국갬성...). 수업이 한번 끝날 때마다 띠지에 칭찬이 적힌 상장을 받고 박수를 치면서 끝난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주 행정명령으로 모든 체육관과 수영장을 폐쇄하는 바람에 즐거운 수영교실은 3번 만에 막을 내렸다. 6월부터는 수영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며 연락이 오긴 했는데 미국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고, 우리 주도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라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남편 몰래 올리는 남편 상의탈의 사진. 수영장이 정말 좋았다. 물도 따뜻하고 온풍기가 쉴새없이 돌아간다.


돌잔치


미국에서 열심히 친구를 사귀어 성대한 생일파티를 해주겠다는 엄마와 아빠의 다짐은 코로나 앞에서 무참히 사라졌다. 5월 말 ‘Stay at home’ 명령은 완화되긴 했지만 이미 두 달 동안 사람을 못 만나 ‘이 시국’을 뚫고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아들 생일파티에 와줄 친구들은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라도 돌잡이를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실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양가에 영상통화를 위해 이원생중계 장비를 설치했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고맙게도 돌잔치 실시간 중계를 해달라고 요청해서 인스타 라이브방송까지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뉴-노멀 시대의 풍경이었다. 한국의 시청자들을 위해 현지 시각 아침 7시, 잠에서 막 깬 아들내미에게 한복을 입히고 분주히 돌잔치를 했다. 20분 남짓한 사이 랜선 돌잔치를 어설프게 했다. 멀리서나마 축하를 받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침에 정신없이 우리만의 파티를 하고는 점심에는 아파트 바비큐장에 가서 조촐한 바비큐 파티를 했다. ‘Happy Birthday’ 풍선을 살랑살랑 들고 바비큐장으로 가는 데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즐거운 생일 보내!’, ‘누구 생일이야? 첫 번째 생일이라니! 진짜 축하해!’ 인사를 한마디씩 한다. 정말이지 이 동네의 오지랖 넓은 문화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저 풍선 덕분에 많은 축하를 받았다.
돌잔치 생중계를 위해 설치했던 장비들.



1살 미만의 아기들은 호흡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3월이나 4월엔 그나마 날씨가 괜찮아서 유모차 덮개로 보호막을 치고 산책하러 나갔는데 여름이 되니 너무 더워서 아무런 보호막도 해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왜 아무거나 만지면 안 되는지, 아무거나 입에 넣으면 안 되는지 알지 못한다.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안전한 곳을 다니는 것만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이제 13개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나가자고 우는 아이를 보면서 이 상황이 너무 야속할 따름이다. 그나마 숲이 있고, 계곡이 있는 곳이어서 가끔 콧바람이라도 쐴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정된다고 과연 아이를 예전만큼 자유롭게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조심해야 할 것들은 많이 질 테고, 아이에게 안된다고 말해야 하는 일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게 이 아이에겐 ‘뉴-노멀(new normal)’이 되겠지. 엄마로서 무력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머무는 사람과 흘러가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