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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l 16. 2020

미국에서 소아과를 가다.

미국으로 오기 전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6년을 살다 온 친구에게 의료보험에 관해 물었다.


“미국에서 병원을 왜 가? 나도 6년 동안 그냥 약 먹고 버텼어! 치과는 방학 때 한국에서 갔지.”


그렇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미국에서 병원 다녀온 사람을 찾기 참 어려웠다.


하지만 돌도 안된 아기는 병원 갈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입하라는 의료보험도 가입하고, 한국에서 여행자보험까지 이중으로 가입하여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의료보험비를 내면서 미국에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거의 매달 병원을 가고 있다.


대학교 입학허가가 난 직후 학과사무실에서는 제일 먼저 비자와 의료보험에 대한 메일을 보냈다. 처음에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을 무조건 가입하라고 해서 약간 강매당하는 느낌이었다. 가격은 한국과 비교해서 상상 초월로 비싸기까지 한 것 아닌가. 근데 6개월 살다 보니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의료보험을 강제로 가입하라고 하는 건 강매나 사기가 아니라 미국에서는 엄청난 특혜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이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기관에서 보증해준 상태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우리나라는 공공보험임에도 그런데 미국의 악명높은 민간 보험사는 오죽할까. 나와 아들 두 명이 연간 3,000달러가 넘는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어 생각할 때마다 손이 떨리지만,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증이 없으면 병원에서 아예 진료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아기들처럼 병원에 가야 할 일이 많으면 그냥 가입하는 것이 속 편하다.


일단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나니 어지간한 병원비는 안 낸다. 아마 이것도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인 소아과 방문이라서 보장범위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고, 안과나 치과같이 특별한 일로 가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보험이 없었다면 내야 하는 돈이 얼마였을까. 지금까지 갔던 5번의 병원비는 모두 1,858달러(띠용? 진짜?)란다. 보통 기본 진료를 받으면 비용이 176달러 정도 되는 것 같고, 12개월 정기 예방접종을 해야 했던 마지막 정기검진에서는 병원비가 920달러가 나왔다. 12월까지 아마 우리 아들은 의료보험료를 제대로 본전을 뽑고 올 것 같다.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병원 방문 중 세 번은 일반적인 정기검진이었고, 두 번은 정말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 정기검진은 듣던 대로 별 것 없었다. 그냥 주기적으로 아이의 성장을 확인 받는다는 수준이었다. 한국에서는 발달검사를 잘해주는 소아과가 영유아 검진 전문 병원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하고 그러는데, 미국은 발달검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대체로 문진으로 진행하고, 검진 중에 의사 선생님이 발달상황을 꼼꼼히 검사하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뭐, 아이가 잘 크고 있으니 별말 없이 넘어갔다고 생각은 하는데 한국이 별나게 발달에 민감한 것인지, 미국이 별나게 둔감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처음 소아과를 가던 날.  너무 긴장해서 병원에 다녀온 후 세 가족이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아파서 병원을 방문했을 땐 미국 의사들은 어지간히 아파서는 약을 안 준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갔다. 다행히 두 번 모두 만족할 만큼 잘 진료를 받고 왔다. 한 번은 아토피 피부염이 심하게 올라와서였고, 다른 한 번은 달걀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특히 알레르기는 미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여서인지 진료도 엄청 꼼꼼히 봐주고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약도 두 번 다 잘 처방받았다. 워낙 어린아이이니 스테로이드는 병이 나으면 바로 중단하라는 정도의 지침이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아과 선생님들 친절하고 잘 치료해주시는 건 모두 같다. 대신 미국은 의료시장 자체가 워낙 민간의 영역인지라 의사도 비즈니스맨 같다. 보험사에서 의사를 검색하다 보면 ‘이 의사가 이 동네에서 가장 싸!’ 이런 광고 문구가 뜨고, 맨 처음 병원에서 연결해준 의사 선생님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해서 불편할 정도였다. 첫 번째 선생님이 영 믿음이 가질 않아서 주위에서 추천받아 다시 선택한 지금 주치의 선생님은 그냥 내가 평소에 보던 의사 선생님 같아 마음이 편하지만, 미국 병원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생경했다.


굉장히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지만 한국 소아과만큼 아기자기함은 없다. 한국에서는 예방접종 후에 아기용 뽀로로 반창고를 이쁘게 붙이고 나오는데 미국은 그냥 성인용 커다란 반창고를 덜렁 붙여준다. 지혈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지만 일단 붙여주니 붙이고 나온다. 정기검진 때는 그냥 아기 옷을 훌러덩 벗기고 내내 검진을 받는다. 몸무게 잴 때는 정확도를 위해 기저귀까지 벗긴다. 물론 기저귀 벗기다가 아이가 몸부림쳐서 몸무게가 제대로 측정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뭔가 어설프고 과격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들은 놓치지 않고 확인받는 느낌이다.


재밌는 점은 미국에는 워낙 영어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병원에서 통역서비스가 기본으로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갈 때마다 한국어 통역서비스를 받고 있다. 한국어를 완전히 모르는 선생님을 만나면 정말 어색한 순차 통역을 했는데, 정말 답답하다. 이번에 달걀 알레르기로 급하게 Urgent Care에 갔을 땐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생님이셨는데 아기 때문에 너무 당황해서 아무리 쉬운 말도 영어로 말하고 듣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심지어 주말이라 통역도 늦게 연결되어서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지금 주치의 선생님은 한국어 듣기는 되지만 말하기가 안되는 한국계 미국인이라서 진료를 받으러 가면 선생님은 영어로 말하고 우리는 한국말로 말해도 통역이 거의 없어도 된다. (전화 연결된 통역사분들은 항상 황당해하신다.)


미국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3월 이후 우리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번 크게 아팠다. 장염 증상처럼 열이 심하게 나고 설사를 했었고, 다른 한 번은 달걀 알레르기 때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장염 증상이 나타났을 땐 열이 나니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아니지만, 병원에서는 방문하지 말고 일단 병원으로 연락을 하라고 했다. 주치의에게 온라인으로 상담을 요청했더니 답장이 오고 필요하면 화상 진료를 해주겠다는 답변이었다. 다행히 열은 하루 만에 떨어졌지만, 태어나 처음 아픈 아이 때문에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더욱이 이 시국에 열이라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아파도 진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레르기 반응이 났을 때는 집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서 아이들 전용 Urgent Care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응급실처럼 사람이 넘치도록 북적거릴 거로 생각했지만, 다행히 환자가 아무도 없었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갑자기 달려갔는데도 일사천리로 진료를 마치고 약도 처방받아 왔다.


1년 내내 한 번도 아픈 적 없던 아이가 돌이 지나자마자 두 번이나 크게 아프면서 하필 이 시국에, 하필 병원 가기 어려운 미국에서 아파서 엄마로서 속상한 마음이 두 배, 세 배로 컸다. 내가 모두 잘못한 것 같고,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했다. 사실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 되도록 내 아이는 하나도 안 아프고 크기를 바랐기 때문이었겠지. 아무튼, 아이는 이제 다시 건강해졌고, 강매로 가입했던 의료보험이 아니었다면 이 시간은 그냥 걱정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지옥이었을 것이다. 이 '위대한 미국'에서 지옥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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