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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an 13. 2021

나의 놀라운 이웃 Azimov 가족 - 플레이 데이트

여름의 초입 우리는 윗 집의 초대를 받았다.

터키식 렌틸 수프와 양고기 요리를 푸짐하게 대접받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부인인 타린은 터키 사람이자 미국 시민권자로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한 후 지금의 동네로 정착하였고, 남편인 잠쉬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터키로 거주지를 옮기고 다시 미국으로 넘어와서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이 정착한 이 동네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물론 둘 다 영어는 아주 완벽하다... 잠쉬드는 5개 국어자... 쭈굴)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국적도 한 개, 할 줄 아는 언어도 한 개인 우리 부부는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다중 국적자 부부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알고 보니 나이도 우리보다 7살인가 어렸다. 세상은 넓고 정말 사람은 다양하구나.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할 일은 바로 플레이 데이트^^...


코로나로 인해 나도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윗 집 남편인 잠쉬드는 주 3일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잠쉬드가 출근하는 월요일과 금요일, 나는 강의를 끝내고 타린과 함께 동갑내기 아기들의 플레이 데이트를 했다. 물론 덕분에 육아에 지쳐있던 남편은 잠시나마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타린과 그의 아들 잡과 플레이 데이트를 하면서 한국에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신기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그녀는 과연 아이와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였다. 엄마와 아빠의 모국어도 다르고, (엄마는 터키어, 아빠는 타지크어) 엄마와 아빠가 같이 쓰는 언어는 영어이며, 아빠는 그 외에도 5개 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미국 국적의 아기는 과연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


나는 미국에서도 어차피 1년 살아서는 이중언어는 꿈도 못 꿀 일이라 아기에게 계속 한국어만 사용해왔기 때문에 타린의 언어 사용이 아주 궁금했다. 우리가 플레이 데이트를 시작하던 무렵 그녀도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한국어 동화책도 가지고 왔니? 아이에게 어떤 말로 대화하니?" 나는 한국어 책도 몇 권 들고 왔고, 영어로 된 동화책도 한국어로 읽어주고 있었다고 하니, 본인도 잡에게 터키어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게 하고 싶어 평상시에는 영어로 이야기 하지만 종종 터키어를 같이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고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에 그녀는 터키어를 사용하는 것을 그만두고 영어로만 아이와 소통했다. 터키어를 중간중간 섞어주다 보니 아이가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잠쉬드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도 우즈베키스탄 분들이지만 영어가 거의 완벽하시다.) 아이가 4명인데 집에서 5개 국어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더니 첫째와 둘째는 5개 국어에 능통한 아이로 자랐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5개 국어를 듣고 자란 셋째는 만 3살까지도 말문이 안트였고, 미국에 정착해서야 영어만 사용하는 아이가 되었단다.


자녀의 언어는 엄마, 아빠가 자유롭게 다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고민하는 문제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동시에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 우리 능력을 넘어서는 외국어 조기교육을 자식에게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문화의 차이와 상관없이 아이의 기질 차이에서 오는 신기함이었다. 우리 아기는 조심성이 굉장히 많은 아이이다. 걸음마도 돌이 지나고 걸음마 보조기를 잡고 2달을 넘게 걷더니 그제야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 가면 내 품에서 한참을 관찰한 후에야 움직이는 그런 아이이다.


반면 윗 집 아이는 도전정신이 강한 아이였다. 6개월이나 빠른 우리 아기가 걷고 있으면 윗 집 아기도 옆에서 혼자 걷겠다며 엄마 손을 뿌리치고 발걸음을 떼었다. 우리 집에 와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바로 내려와 우리 아기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곤 했다.


나는 우리 아기에게 "잡처럼 이것도 만져봐, 저것도 해보자."라는 말을 많이 했고, 윗 집의 그녀는 잡에게 "Be gentle like him."이라고 항상 말했다. 처음엔 너무 다른 두 아이라서 괜한 걱정도 하곤 했는데 이내 서로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코로나 때문에, 내 고향이 아닌 곳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던 두 아이에게 또래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서로를 관찰하고,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나씩 따라 해 보는 과정이 눈에 보이니까 정말 신기했다. 우리 아기는 윗 집 아기를 따라 용기 내어 새로운 장난감에 손을 대어보고, 윗 집 아기는 우리 아기를 따라 소리 지르며 떼쓰려다가도 잠잠해지곤 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에서 오는 편안함도 있지만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도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두 아이의 만남이, 그리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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