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Jan 09. 2021

나의 놀라운 이웃 Azimov 가족 - 첫만남

처음 미국 집에 이사갔을 때 6개월 된 아기의 울음소리가 혹여 이웃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매우 걱정했다.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로 지어진 미국 집들은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층간소음이 매우 심하고, 

관리사무소에서 3번 경고를 하면 강제 퇴출이다, 층간소음때문에 경찰이 집에 오기도 한다 등등 흉흉한 소문을 너무 많이 접한 까닭이었다. 


예상대로 아기는 밤새도록 울었다. 

시차 적응을 하기까지의 10일 동안은 새벽에도 깨서 목청좋게 울어버려서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관리사무소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영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층인 우리집 위로 2층, 3층에 어떤 이웃들이 사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에 그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다행히 아기는 어떻게 어떻게 시차를 적응해서 새벽에는 크게 울지 않았고, 생활이 안정될 수록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마음 졸일 순간들은 줄어들었다.

옆 집의 인상좋은 흑인 모자와 앞 집의 손님이 매일 끊이지 않는 아줌마와도 인사를 하고 미국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기를 재우고 서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안방으로 가보니 우리 아기는 너무 고요하게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아기가 우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부디 아기의 가족들이 평온한 밤을 보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방음이 전혀 안되는지 바로 옆에서 아기가 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 우리 이웃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리고 며칠 후, 새벽의 정체모를 아기 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윗 집 베란다에 한 금발 여인이 갓난 아기를 안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 윗 집에도 아기가 살고 있었다. 

보기만해도 너무 어려보이는 아기를 보며 신생아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고단했던가 나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베란다에서라도 바깥 기운을 느끼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후 윗 집 가족과 우리 가족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며 종종 스쳐지나가곤 했다. 

모두 아기 유모차를 끌고 정신없이 서로에게 인사는 못하고 지나가기를 몇 번. 


6월 언저리쯤 (아이고! 늦기도 엄청 늦네!) 우리는 주차장에서 만났다. 

남편이 비도 안오는데 우산을 가지러 가자며 차로 가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윗 집 가족이 차 트렁크에서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안녕! 1층에 사는 사람들 맞지?"

"어 맞아! 반가워!"


그렇게 우리는 첫 인사를 했다. 


모든 엄마아빠가 그렇듯이 세계 만국 공통 인사 "아기는 몇 개월이니?"로 시작한 우리의 만남은

미국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우연치 않게 우리가 입국한 다음 날 태어났다는 윗 집 아기는 우리 아기와 동갑이었고, 그들은 신생아를 돌보느라 남의 집 아기 우는 소리를 들을 여유는 없었다고 한다.

(물론 미국은 산후조리원이 없기 때문에 아기를 낳고 이틀 후에 아기와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고 한다.)

밤새 울고 깨는 신생아를 돌보는 부모의 전쟁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터키에서 온 잠쉬드와 타린. 

타린은 우리도 아이가 있고, 아랫집도 아기가 있는데 우리가 왜 안 만나고 있는거냐며 몇 달 동안 이야기 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이 항상 하던 이야기를 그들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지에서 살고 있는 육아 전사들은 서로의 동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더더욱이 그 기로가 막혀버렸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캘리포니아에서 온 멜로디 아줌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